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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독·프 뜻대로…우파 대통령에 좌파 외교장관

등록 2009-11-20 19:27수정 2009-11-20 22:17

EU상임의장·외교대표 선출
거물실세보다 소국출신 관리자 대통령 선택
외교장관은 좌파·여성 고려한 타협의 산물
19일 저녁 6시, 벨기에 브뤼셀에서 남자 스물여섯명과 여자 한명이 저녁을 겸한 긴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를 시작한 지 1시간 30분이 조금 지나서였을까. 이제껏 ‘유럽 대통령’ 1순위로 거론됐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이 회의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27명의 유럽연합(EU) 정상들은 20여명의 후보자 명단을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모임 3시간 만에 프랑스와 독일이 민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가 블레어가 노렸던 자리를 꿰찼다는 얘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자 이를 확인하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대통령을 정한 뒤 ‘유럽 외교장관’을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으로 정하는 데는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럽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이날 유럽 정상들의 4시간 넘는 만찬을 <아에프페>(AFP) 통신은 시시각각 보도했다. 유럽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초대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이하 상임의장)과 유럽의 외교장관으로 통하는 외교정책 고위대표(이하 외교대표) 지명은 27개 나라로 구성된 인구 5억의 거대한 유럽연합의 복잡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두 자리는 유럽 내 좌·우파, 성별, 큰 나라와 작은 나라 간의 절묘한 절충점이었다.

가장 중요한 상임의장 자리는 유럽연합의 정치적 다수인 중도우파의 차지였다. 판롬파위는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 출신이다. 스페인의 응원을 받으며 블레어를 내세운 영국은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27개 정상들 가운데 범좌파는 8명에 불과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대신 ‘리스본 체제’의 2인자 자리인 외교대표를 좌파 몫으로 양보했다.

외교대표로 지명된 캐서린 애슈턴은 여성 할당이기도 하다. 유럽의회 내 녹색당연합 회장인 레베카 하름스는 “유럽연합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하게 될 위험이 있다”며 상임의장이나 외교대표 둘 중 한 자리를 여성에게 할당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고 <슈피겔>이 보도했다.

국제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 총리를 선택한 데는 유럽 최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계산이 반영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디언>은 두 나라가 “‘대통령’이 아니라, ‘의장’을 원했다”고 보도했다. 거물급 실세보다 자신들의 입김이 통할 만한 소국 출신의 ‘관리자형 리더’를 선호했다는 것이다.

유럽 내 세력 균형 싸움에 외부 선수도 참가했다. <가디언>은 유럽 좌파 진영에서 마시모 달레마 전 이탈리아 총리를 외교장관으로 논의해왔지만, 친팔레스타인 성향인 그의 지명에 이스라엘이 반대 로비를 펴왔다고 전했다. 모든 것은 커튼 안 제한된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이뤄졌다. 공개적으로 상임의장에 도전장을 냈던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전 라트비아 대통령은 유럽을 대표하는 자리를 밀실에 모여 결정하는 것은 “옛 소비에트 방식”이라고 비난했다. <가디언>은 “유럽의 오랜 파벌정치의 역사가 이번 결과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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