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5일 로마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주최쪽은 베를루스코니의 약자인 B를 따서, 이날을 ‘베를루스코니 반대의 날’(NO B Day)로 선포했다. 로마/AP 연합뉴스
“베를루스코니 물러나라, 더이상 못참겠다”
총리 잇단 성추문 이어 ‘마피아 밀약설’
이탈리아 시민들 폭발…퇴진운동 나서
총리 잇단 성추문 이어 ‘마피아 밀약설’
이탈리아 시민들 폭발…퇴진운동 나서
각종 성추문에 이어, 현직 총리에 대한 면책특권 박탈로 과거 부패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서게 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최근 ‘마피아 후원’ 의혹까지 터져나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마침내 5일 수도 로마에서는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시위가 벌어졌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10만명(경찰 추산 9만여명)의 시위대가 베를루스코니의 퇴진을 요구하며 로마역에서 성 요한 바실리카 성당까지 행진했다고 전했다. 이날을 ‘베를루스코니 반대의 날’(NO B Day)라고 정한 인터넷 블로거 모임의 주도로 열린 시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다리오 포 등 작가와 영화배우들도 참가했다. 그간 온갖 스캔들 속에서도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던 이탈리아인들의 인내심이 이제 ‘임계치’에 다다른 듯하다.
시위 주최 단체들은 이에 앞서 지난 10월부터 지금까지 30여만명이 인터넷 커뮤니티인 ‘페이스북’을 방문해, 베를루스코니 사임 요구에 동의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총리 3연임에 성공한 뒤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들의 편파적인 보도 덕에 한때 60%를 넘겼던 그에 대한 지지율도 최근 조사에서는 45%로 떨어졌다.
18살 난 모델 지망생에게 1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한 사실이 드러나고, 성매매 여성과 침실에서 나눈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가 공개돼 곤욕을 치른 베를루스코니가 당면한 최대 위협은 ‘위증 교사’ 혐의다. 그는 텔레비전 채널권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탈세·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있는데, 이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그가 영국인 변호사에게 60만달러를 주고 위증을 하게 한 의혹이 불거져나왔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 ‘고위 공직자 면책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베를루스코니는 법정 출두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변호사는 위증 혐의로 이미 징역 4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피아 후원 밀약설은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4일 시칠리아 마피아와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마르첼로 델 우트리 상원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 마피아 조직원은 “베를루스코니가 정치적 후원을 받는 대가로 마피아 조직에 모종의 혜택을 주기로 밀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1994년 보스였던 주세페 그라비아노한테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라비아노는 1990년대 초 공권력에 맞서 밀라노와 로마, 피렌체 등지에서 폭탄 공격을 감행한 악명 높은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의 대부다.
이탈리아 경찰은 이런 증언이 나온 지 하루 만인 5일, 3년째 숨어지내던 코사 노스트라의 2인자 잔니 니키(28)와 지난해 수배한 3인자 가에타노 피단차티(74)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며 “이는 남을 헐뜯기나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의 비방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막 궤도에 오른 베를루스코니 퇴진운동의 불꽃도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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