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재유럽 현장보고]
유럽 하늘 마비에 이탈리아 로마가 ‘재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다른 유럽국가에 가장 근접한 로마 공항과 기차역 등엔 귀국편을 찾는 외국인들로 북새통이지만, 여기서도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로마 시내에서 숙박처를 찾고 있다.
‘23일까지 북부 유럽으로 가는 기차표는 모두 매진.’
19일 오전 9시 이탈리아 로마의 중앙 기차역인 테르미니역 매표소에는 이런 내용을 알리는 입간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매표소에는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표를 구하느라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대부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여파로 항공편이 결항되자 대체 운송수단을 찾아 기차역으로 몰려든 사람들이다. 일부 여행객들은 표를 빨리 끊고자 밤을 새우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부활절 휴가를 맞아 프랑스 파리에서 로마에 왔다는 클레멘트(24)는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줄을 섰으나 아직 표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무원인 40대 후반의 기세페는 “여기에 줄을 선 사람들은 모두 런던이나 파리, 뮌헨 등지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그러나 4일 뒤까지 모두 ‘풀(full, 만석)’”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부터 6박 8일 일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온 영국인 스티븐슨(50)은 애초에는 17일 저녁 항공기편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으나 아직까지 로마에 발이 묶여 있다고 했다. 스티븐슨은 “기차표나 버스표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아직까지 구하지 못했다”며 “오늘은 꼭 기차표를 손에 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기차편으로 파리로 간 뒤 버스로 프랑스 북부 지역인 칼레로 이동해 도버해협을 배로 건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속열차인 유로스타를 이용해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동할 수도 있으나 값이 4인 가족에 800파운드(약 140만원)를 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여행객들은 유럽의 교통 요충지인 파리로 가는 기차편을 구하기가 어렵자 프랑스 남부 지역인 니스나 스위스 취리히로 우선 이동한 뒤 파리행 기차표를 구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유럽 일주 ‘50일 대장정’에 나섰다는 한국인 배낭여행객 이아무개(32)씨는 “지난주에 니스를 거쳐 스페인에 가기 위해 니스에 갔으나 프랑스 열차 파업으로 가기 힘들어져 스페인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로마로 왔다”며 “이번에는 다음 여정지인 파리로 가야 하는데 화산 폭발 여파로 파리행 기차표를 못 구해 또다시 니스로 가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와 동행한 또다른 이아무개(33)씨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이 나한테까지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며 “여행이 엉망이 돼 버렸다”고 울먹였다.
일부 여행객들은 20명, 30명 단위로 버스를 예약해 파리나 뮌헨 등지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인 8명을 포함한 30여명은 19일 오전 기차역과 호텔 등지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로 ‘다국적 원정대’를 구성해 뮌헨으로 가는 버스를 대절해 출발했다. 뮌헨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9시간이나 됐지만 이들은 다른 대체 수단이 없이 1인당 120유로(약 19만원)씩을 지불하고 버스를 탔다.
여행객들은 항공사들의 무성의한 대응에 불만을 터트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저가항공인 라이언에어를 타고 로마에 왔다는 아네트는 “어제까지만 해도 19일 오후 1시부터 비행을 재개한다고 해서 애초 17일 출발하는 항공편을 19일 밤 항공편으로 변경했으나 오늘은 21일부터 재개한다는 내용만 홈페이지에 올려놨을 뿐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숙박 제공은커녕 공항에 오지 말라는 내용뿐”이라고 말했다. 영국인 스티븐슨은 “이번 부활절 휴가는 내 생애 최악의 휴가가 된 것 같다”며 표를 구하는 긴 행렬에 다시 들어갔다.
로마/박현 기자 hyun21@hani.co.kr
로마/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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