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로 “우파의 선동적 언론” 정면 비판
기자 7명 투입 “도덕적 기준·언론 자질 검증”
기자 7명 투입 “도덕적 기준·언론 자질 검증”
독일판 언론전쟁 점화
“<빌트>=방화광”.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도좌파 성향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지난주 발행한 최신호(사진)의 표지 제목이다. 독일과 유럽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보수우파 신문인 <빌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독일에서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우파 대중정당의 역할을 하는 선동적 언론”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언론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슈피겔>이 이번 특집기사를 위한 탐사보도에 7명의 기자를 투입해 <빌트>의 “도덕적 기준과 언론으로서 자질”을 검증한 일은 경쟁언론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오던 독일 언론의 관행을 깨뜨린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슈피겔>은 “독일의 의회나 정부 부처, 총리실까지 <빌트>의 머리기사를 아무런 조사도 해보지 않은 채 국민 정서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빌트>는 집권 기민당 내 우익 파벌”이라고 비판했다. 또 <슈피겔>은 “<빌트>의 편집진은 독일 언론계의 골목대장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독일 주류의 대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빌트>가 써대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대로 따른다는 얘기다.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최근 <빌트>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신생아 4명 중 1명꼴로 외국인”이라며 “독일 내 레바논계의 90%, 터키계의 26%가 국가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결과 독일 집권여당은 복지법 개정을 통해 이민자들의 복지 혜택을 제한하는 조처를 취했다. 지난해 그리스 재정 위기 때도 “그리스가 독일 은행을 파산시키려 하나?” “그리스는 우리의 돈을 원한다”는 머리기사들을 써댔다.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의 구제금융에 그토록 보수적인 자세를 취했던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주말 독일의 유명 밴드 가운데 하나인 ‘비어 진트 헬덴’(우리는 영웅)의 여성 리드싱어인 유디트 홀로페르네스(35)는 <빌트>의 광고 의뢰를 거부하는 심정을 공개 편지로 밝히기도 했다. 그는 “<빌트>는 위험한 정치적 도구”라며 “혼란의 구렁텅이만 쳐다보는 확대경이자 사악한 존재”라고 힐난했다.
특집 기사에 함께 실린 인터뷰에서 <빌트>의 카이 디크만 편집국장은 ‘편견을 선동하는 방화범’이라는 비판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우리가 국민들에게 팩트를 가져다줘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팩트를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얘기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최고의 신문이 됐다”며 “우리 신문을 보면 무엇이 국가를 함께 끌고 가고 국민들을 이끌고 가는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52년에 창간된 <빌트>는 800명의 기자를 두고 300만부를 발행해 독일과 유럽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지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선정적인 내용과 함께 폭로 위주의 기사를 싣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독일 내에서 27개의 지방판을 함께 발행하는 미디어업체인 동시에, 이른바 ‘폴크스’(국민) 브랜드의 ‘국민 청바지’ ‘국민 피자’ ‘국민 컴퓨터’ 등의 사업을 통해서도 돈을 벌고 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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