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 언론사 불법도청 파장
불법도청 왜 묻혔었나
도청 문서 나와도 수사 미적
사건 커질대로 커지자 칼 빼
불법도청 왜 묻혔었나
도청 문서 나와도 수사 미적
사건 커질대로 커지자 칼 빼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도청 사건은 영국인들을 2번 놀라게 만들었다. 언론사가 4000여명을 도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데, 6년여 전에 단서가 잡히고도 제대로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2차 충격을 가한 것이다.
사건은 2005년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윌리엄 왕자가 무릎을 다친 것에 관해 보도하자, 왕실은 도청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수사를 의뢰한다. 이 신문 왕실 담당 기자 클라이브 굿먼과 그를 도운 사설탐정 글렌 멀케어가 이듬해 8월 휴대전화 음성메시지 도청 혐의로 체포되면서 꼬리가 잡힌다. 하지만 수사 결론은 굿먼과 멀케어의 단독 범행일 뿐 조직적 범죄행위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도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폭로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미온적 태도를 유지했다. <가디언>은 2009년 7월, 3000여명이 피해를 봤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경찰은 그런데도 증거가 부족하다거나 신문사 지휘부는 모르는 일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07년에는 윌리엄 왕자 관련 사건으로 체포됐던 멀케어의 집에서 도청 관련 문서 1만1000여쪽을 압수했지만 수사가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의혹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자 경찰도 뒷짐을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비비시>(BBC) 방송이나 미국 <뉴욕 타임스>도 <뉴스 오브 더 월드> 출신자 등을 인터뷰해 의혹을 뒷받침했다. 결국 경찰이 지난 1월 “중요한 증거를 발견했다”며 본격 수사를 선언하고,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편집장 출신으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공보책임자로 일하던 앤디 쿨슨이 사임하면서 머독의 언론 제국에 본격적으로 먹구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국 언론들은 17일(현지시각) 사임한 폴 스티븐슨 런던경찰청장이 “사건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었다”고 주장했지만 머독 언론 제국의 영향력이 수사를 왜곡시켰다고 보고 있다. 그가 윌리엄 왕자 도청 사건으로 2명이 체포되고 한달 뒤 당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부편집장이던 닐 월리스와 비밀 회동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영화배우 시에나 밀러 등 일부 피해자들에게 모두 100만파운드(약 17억원)를 주며 입을 다물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 신문이 경찰 간부들의 음성메시지를 도청해 치명적 약점을 쥔 게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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