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인도네시아서 저지른 대량학살 대상
‘반인도적 범죄, 공소시효 배제’ 원칙 적용 판례
‘반인도적 범죄, 공소시효 배제’ 원칙 적용 판례
네덜란드 법원이 1947년 네덜란드 군이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가 당사자와 유가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네덜란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며, 민간인 학살과 같은 ‘인류에 대한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의 원칙을 적용한 판례로 보인다.
<에이피>(AP) 통신에 따르면, 14일 네덜란드 헤이그 민사법원은 1947년 12월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의 라와게드 마을에서 네덜란드 군에 의해 즉결 처형당한 민간인 7명의 부인들이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원고들의 남편들을 불법적으로 처형함으로써 고통을 줬으므로 배상 책임이 있다”며 “공소 시효가 지나 원고들이 배상받을 자격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불합리하다”고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이 판결이 나오자, 원고 쪽 변호사 리스베트 제그벨드는 “정의가 이뤄졌다”며 “이 판결은 국가가 60년 동안 이 사건이 사라져버리거나 원고들이 죽어없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이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군은 1947년 12월 독립운동에 관여됐다는 이유로 라와게드 마을에서 150~430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을 즉결 처형했다. 이후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1968년 한 보고서에서 이 사건의 폭력이 지나쳤다는 점을 인정했으나, 네덜란드 군은 게릴라전이나 테러 공격에 대한 치안유지 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또 1995년에는 당시 인도네시아인들을 즉결 처형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나, 당시 군 관계자 가운데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2008년 8명의 피해자 부인과 1명의 생존자가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 도중 한 명의 피해자 부인과 생존자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도네시아는 17세기 말에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돼 25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수카르노를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을 선포하고 네덜란드 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1949년 12월 독립을 쟁취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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