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인구는 2차대전 말의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위키피디아 안드레아스 틸레 사진
이탈리아 베네치아 인구 2차대전 말의 3분의 1수준
관광객은 하루에도 인구의 2배 넘게 방문
‘부재자의 주택고급화’ 현상도 심각
“관광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공동체’ 잃었다””
관광객은 하루에도 인구의 2배 넘게 방문
‘부재자의 주택고급화’ 현상도 심각
“관광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공동체’ 잃었다””
“예전에 여기에는 정육점 둘, 식료품점 여러개, 빵집 둘, 바느질집 하나, 구두수선집 하나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 이탈리아 전국보존그룹’의 베네치아 지부 책임자인 페르수오치는 자신이 자란 베네치아의 산 사무엘레 동네를 추억했다.
세계적 관광 도시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몰려드는 관광객 탓에 죽어가고 있다고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이 도시의 인구는 2차 대전 말의 17만5천명에서 현재 5만9천명으로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베네치아의 기반시설과 가게들이 점점 관광객에게 맞춰지면서 일상적 삶을 살기가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의깊은 방문자들은 잘 꾸며진 길을 떠나 구불구불한 골목에서 모험을 하지만 매력적이면서도 무섭도록 조용한 광장들은 그들에게 묻는다. “진짜 베네치아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페르수오치는 “이곳은 더 이상 정상적인 도시가 아니다”라며 “싱싱한 채소를 원하는 사람들은 수상 버스를 타고 멀리 가야 하지만, 불과 집에서 몇 미터 안에서 2000유로의 시계나 400유로의 카니발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의 유머 가운데는 우유 한 병을 사려는 관광객에게 길을 안내하는 풍자적인 내용도 있다. “구치를 지나서 펜디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돌체&가바나에서 다리를 건너면 거기 식료품점이 있을 것이다. 그 주인이 죽지 않았다면.”
지난 여름의 며칠 동안은 단 하루에 이곳 인구의 2배가 넘는 13만명의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 전국보존그룹은 엄청난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기 위해 예약을 통해 대형 크루즈를 타고 오는 관광객만 받는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무시됐다. 또 이 그룹은 지난 7월 유엔에 베네치아를 ‘위험에 처한 도시’ 명단에 올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대량의 관광객, 환경적 무관심, 새로운 건설 계획이 산호 위에 지어진 이 도시를 더욱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관광이 이 도시 경제의 원동력이며, 관광 분야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너무도 관광에 의존함으로써 베네치아는 그 사회 조직(공동체)를 잃었다”고 페르수오치는 말했다. 베네치아의 작가 카테리나 팔로모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화제가 열리는 이 도시에 시민들을 위한 영화관이 단 두 개뿐이라는 점도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베네치아에는 이곳에 집이나 건물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으며, 최근 ‘부재자의 주택고급화(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심각하다. 그들의 공동주택을 학생이나 노동자의 생활을 위해 싼 값에 장기간 빌려주기보다 관광객들에게 비싼 값에 단기간 빌려주는 것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집들은 미국이나 호주의 부자들에게 팔리기도 하는데, 이들은 집을 1년에 몇주, 심지어 며칠만 사용한다.
리알토 다리 옆의 모렐리 약국의 창문에는 거주자의 숫자를 표시하는 전자장치가 있다. 9월 기준으로 인구는 5만9254명이다. 105년 동안 이 약국을 운영해온 설립자 모렐리의 손자 안드레아 모렐리는 “이 숫자가 올라가길 바라지만 당분간 그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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