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르 승리 축하하려다 ‘전례없는 비난’에 당황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경기가 끝난 뒤 승자를 축하하러 링에 올라갔다가 관중들의 야유를 받았다. 그를 좋아하지만, 대통령 3선까지는 바라지 않는 러시아인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밤 모스크바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푸틴을 향한 러시아인들의 휘파람과 고함은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이것은 내년에 대통령으로 복귀하려는 푸틴에 대한 전례없는 비난이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유도 애호가인 푸틴은 오랫동안 러시아 헤비급 종합격투기 선수인 효도르 에멜리아넨코의 팬이었고, 그와 미국 제프 몬슨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에멜리아넨코가 이긴 뒤 푸틴은 링 안으로 들어가 그를 축하했다. 그 순간 2만2000명의 관중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러시아의 프로권투연맹의 대변인 안드레이 바즈드레프는 에코 모스크비 라디오 방송에서 푸틴이 예상치 못한 부정적 반응에 놀란 것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 냉정을 되찾아 에멜리아넨코는 중세 러시아 전사였던 ‘보가티르’라고 칭찬했다고 전했다.
이 장면은 곧 인터넷에 올랐다. 러시아의 유명 블로거 가운데 하나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한 시대의 끝”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푸틴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인기있지만, 그에 대한 지지율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연구소인 레바다 센터의 지난 10월 조사를 보면, 그에 대한 지지는 1년 전 77%에서 61%로 떨어졌다.
내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2000~2008년에 이어 3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푸틴은 당선이 확실시된다. 그럼에도 지난 몇 달 동안 59살인 자신이 여전히 강하고 정력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널리 사용되는 모스크바 등 대도시의 러시아인들은 텔레비전에서 이목을 끌려는 푸틴의 노력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그는 스케이트를 신고 옛 아이스하키 스타와 경기를 벌여 점심을 내는 장면을 텔레비전 녹화했다. 또 지난달 그의 대변인은 그가 해저에서 고대 그리스의 단지 조각을 주워 올리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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