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감청기관에 정보 바로 제공’ 입법 추진
시행땐 웹사이트 방문 등 훤히 들여다보게돼
시민단체 강력 반발…보수당서도 반대 의견
시행땐 웹사이트 방문 등 훤히 들여다보게돼
시민단체 강력 반발…보수당서도 반대 의견
영국 보수당 정부가 ‘온라인 민간인 사찰’ 합법화 법안을 제출키로 하자, 시민단체가 중국·이란에서나 볼 수 있는 ‘감시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을 보면, 내무부는 감청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의 요구가 있을 경우 영국 내 모든 인터넷 기업들이 전화·이메일 교류 기록과 웹사이트 방문 기록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 회기에 맞춰 가능한 한 빨리” 입법화할 계획을 세웠다. 새 법안은 2010년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강화를 규정한 ‘전략 방어와 안보 재검토’에서 슬쩍 언급했던 내용으로, 5월9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연설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내무부는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영장없이 열어볼 수 없도록 할 것”이라며 파장 축소에 나섰다. 내무부 대변인은 또 “경찰과 정보당국이 심각한 범죄와 테러리즘을 조사하고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통신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새 법안이 시행될 경우, 정보기관은 어떤 개인이나 그룹이 언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접촉했는지, 특정 웹사이트에 누가 방문했는지를 마음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게다가 2009년 당시 야당이었던 보수당은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노동당 정부의 유사법안을 앞장서 반대한 전력이 있다. 노동당이 감시대상 민간인의 모든 전화통화와 이메일, 인터넷 접속기록을 정부 운영 테이터베이스에 축적하는 이른바 ‘빅 브러더 입법’을 추진했지만, 보수당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새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왔다. 보수당 하원의원인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새 법안은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들이 아닌 ‘모든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염탐능력을 불필요하게 확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의 반발은 격렬하다. 사생활과 시민자유 보호단체 ‘빅브러더워치’의 책임자인 닉 픽클스는 “영국이 중국과 이란에서나 볼 수 있는 종류의 감시를 채택하는 전례없는 조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온라인 사생활에 대한 명백한 침해인 반면, 공중의 안전을 실제로 향상시킬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리버티’의 책임자 샤미 차크라바티도 “이전에 행해졌던 어떤 조처보다 야심적이며, 민주주의에 반하는 매우 극단적인 조처”라고 일갈했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 협회’도 “법률상의 어떤 변화도 사용자들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며 점잖은 톤이지만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가디언>은 업계가 자료축적 비용 문제와 사용자들의 반발에 대한 우려로 새 법안에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보수당과 시민단체 안팎, 업계 등의 반발로 법안 시행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비비시>는 “여왕 연설에서 발표된다고는 하지만, 어떤 새로운 법률도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시민들과 상원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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