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너무 가벼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유머감각이라곤 없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결국 ‘영-프 충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보수와 진보라는 뚜렷한 정책 차이를 보여온 두 정상이 전세계 언론의 주목 속에 극복하기 힘든 성격 차이까지 확인한 것이다.
먼저 도발한 것은 캐머런 총리다.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각) G20 기업인 포럼을 취재 온 기자들에게 올랑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부자증세를 도마에 올려 무례한 발언을 쏟아냈다. 캐머런은 “프랑스가 연수입 100만유로 이상 고소득자에게 소득세 75%를 과세하면, 우리는 레드카펫을 깔고 (프랑스를 탈출해) 영국에서 세금을 낼 프랑스 사업가들을 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세금은 학교 등 영국의 공공 서비스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이 “반은 농담”이라고 밝혔지만, 다른 나라 정책에 대한 ‘국가 지도자’의 비판 치고는 경솔했던 게 사실이다.
이날 발언은 올랑드의 부자증세가 프랑스의 극소수 부자들한테만 영향을 주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는 별 기여를 못하는 ‘상징적인 진보정책’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이었다. 캐머런의 보수당 정부는 국가 세입에는 별 도움이 안되고 기업에는 장벽이 된다면서 지난 3월 최고 세율을 50%에서 45%로 내린 바 있다.
올랑드는 이튿날 “모든 사람은 그가 말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한다. 유럽의 연대가 강해져야 할 때, 나는 그걸 깨뜨리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정색하고 영국 총리의 발언을 비판한 것이다. 캐머런의 ‘반농담’ 뒤 성장 정책 등 올랑드가 G20에 첫 참석해 밝힌 많은 어젠다들이 묻혀 버린 것에 대한 짜증도 섞여 있었다.
발끈하기는 올랑드의 동료 좌파들도 엇비슷했다. 클로드 바르톨로니 의원은 “낮은 세율 혜택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한 뒤 의료혜택과 자녀교육이 필요할 때는 공공서비스가 좋은 프랑스로 돌아오는 그런 프랑스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피에르 로랑 프랑스 공산당 당수는 “유럽의 조세피난처를 노리는 영국의 생각을 알게 돼 애석하다”며 캐머런의 농담을 ‘직역’해 맞받아쳤다.
그러나 프랑스 내부에서조차 너무 경직된 올랑드와 좌파들의 대응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올랑드 대통령이 G20에서 ‘유머감각 부족’으로 고생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반농담’에는 ‘반농담’으로 대응하는 편이 나은데, 올랑드가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G20 분위기와 양국 관계만 냉랭해졌다는 지적이다. 올랑드와 달리 미셸 사핀 프랑스 노동장관은 “솔직히 나는 어떻게 영국 해협을 가로질러 레드 카펫을 깔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젖을텐데”라고 농담으로 맞받아쳐 올랑드와 비교가 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11월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감놔라 배놔라’ 경거망동을 하다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한테서도 “입을 다물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막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캐머런은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지난달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느라, 영국을 방문한 올랑드 당시 대선후보와의 면담을 거절하기도 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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