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거주자 침실 수 제한
가족보다 방 많으면 보조금 삭감
호화 저택 셋 중 하나 비었는데도
추가 세금 부과 미미 ‘부자 편향’
가족보다 방 많으면 보조금 삭감
호화 저택 셋 중 하나 비었는데도
추가 세금 부과 미미 ‘부자 편향’
수백억원대 저택이 즐비해 ‘백만장자 거리’로 불리는 영국 런던 북부 부유층 동네의 호화 저택이 셋 중 하나는 텅 빈 채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나자, 새로 도입된 ‘침실세’(Bedroom tax)와 치솟는 집값이란 이중고에 시달리는 민심이 분노하고 있다고 <가디언>이 2일 전했다.
이 신문은 지난 31일 영국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햄스테드 인근 비숍가의 호화 저택 상당수가 중동 부호 등 외국인이나 조세회피 지역에 적을 둔 페이퍼컴퍼니에 투자를 이유로 팔린 뒤, 수십년간 ‘유령집’으로 방치돼 있는 현실을 보도했다. 지난해 4월 집권 보수당이 복지 개혁을 이유로 도입한 침실세가 큰 반발을 사고 있는 가운데 이 보도는 큰 반향을 불렀다.
침실세는 공공 임대주택 등에 살며 주택보조금을 받는 66만여가구의 서민층한테 부과되는 것으로, 가족수에 견줘 집에 남는 침실이 있으면 주택보조금을 14~25%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집권 보수당이 주택난을 이유로 서민 임대주택 사용을 효율화한다며 10살 이하 아이는 성별이 달라도 침실 하나를 공유해야 하고, 동성 자녀는 16살까지 침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전제를 붙여 공간 사용을 규제하고 위반 때는 제재하겠다고 해 논란을 지폈다. 하지만 슈퍼부자들은 침실 수십개가 있는 저택을 수십년간 방치해도 실질적 제재를 받지 않아, 불공정성과 도덕성 논란이 빚어진 것이다. 런던 지자체가 비숍가 슈퍼부자들의 텅빈 집에 부과한 추가 세금은 연간 1416파운드(252만원) 정도에 불과해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
영국의 집값 급등은 실거주 목적이 없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파 성향 싱크탱크인 ‘시비타스’조차 최근 이들의 투자 규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비숍가의 텅빈 호화주택도 1991년 걸프전을 전후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사들인 뒤 방치하거나 제3세계 부호들이 성공의 상징이나 투자 목적으로 사둔 사례가 많다. 이러다 보니 주택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호화주택이 건설되고 런던의 집값이 연간 11.2%씩 치솟아 서민이 집값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민은 침실세를 피하려 해도 옮겨갈 주택을 찾기가 쉽지 않아 주택수당 삭감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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