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시위대 캠프 강제 해산 나서
지붕 위 저격수 시위대 조준 사격
밤새 유혈 충돌…최소 25명 사망
정부-야당 협상도 합의 도출 실패
유럽연합, 제재 방안 논의하기로
지붕 위 저격수 시위대 조준 사격
밤새 유혈 충돌…최소 25명 사망
정부-야당 협상도 합의 도출 실패
유럽연합, 제재 방안 논의하기로
우크라이나 경찰이 반정부 시위대 캠프의 심장부에 진입해 강제 해산을 시도하는 와중에 적어도 25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치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수도 중심부가 밤새도록 화염에 휩싸이고 총성이 난무했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 사태다. 최근 시위대가 주요 정부 청사 점거를 풀어 타협의 실마리가 보이던 우크라이나의 정정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19일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성명을 내어 수도 키예프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충돌로 적어도 25명이 숨졌으며, 경찰과 언론인 등을 포함해 241명이 병원으로 실려 간 상태라고 밝혔다고 영국 <비비시>(BBC) 등이 전했다. 하지만 18~19일 이틀에 걸쳐 밤새도록 유혈 충돌이 있었던데다 추가 충돌도 배제할 수 없어 사상자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게다가 키예프뿐 아니라 적어도 다른 도시 세곳에서 경찰서 방화 등 반정부 시위와 폭력 사태가 번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위기를 타개할 수 있으리란 희망은 폭동과 화염에 휩싸인 건물, 섬광 수류탄, 고무총탄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고 짚었다. 정부와 야당 대표들은 밤샘 폭력 대치가 벌어지는 동안 협상을 시도했으나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19일 오전 성명을 발표해 “야당이 선을 넘었다”고 비난했다. 이를 두고 <에이피>(AP) 통신은 “성명서의 도전적인 뉘앙스는 타협의 희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정정 불안은 지난해 11월21일 친러 성향의 현 정권이 러시아의 압력에 밀려 장기적으로 유럽연합(EU)의 일원이 되려는 정치·경제 협력 협정 추진을 중단하자 시작됐다. 반정부 시위대와 야권 정치인 등이 키예프 중심의 독립광장 등에서 석달가량 점거농성을 이어왔는데, 14일 정부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인사 234명을 모두 석방한 데 화답해 16일 주요 청사 점거를 풀고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모색해왔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조국당 당수와 권투선수 출신인 비탈리 클리치코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대표 등 야당 지도자들은 야누코비치 대통령한테 개헌을 해서 총리 및 각료 임명권을 의회에 주고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한편 조기 총선·대선을 치르라고 요구하며 현 정부를 압박했다. 야당은 18일 의회에서 개헌 결의안을 상정하려 했으나, 다수당인 여당에 밀려 실패했다. 이런 가운데 반정부 시위대의 한 축인 극우정당 지지자 수천명이 의회 진입을 시도했고, 일부 시위대는 여당 당사 점거를 추진하는 등 수도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유혈 충돌이 빚어졌다.
이런 소요 끝에 경찰이 18일 저녁 2만~3만여명이 모인 시위대 캠프에 진입한 뒤 밤새 충돌이 벌어져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경찰은 진입에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저녁 6시까지 무질서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당국이 질서를 회복하겠다”며 최후통첩을 했다. 하지만 야당 지도자들은 캠프를 사수하겠다며 맞섰다. 경찰 병력은 이날 저녁 8시께 무장 차량으로 시위대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광장에 진입해 섬광 수류탄과 고무총탄, 물대포 등을 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시위대도 불타는 타이어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돌과 화염병 따위를 던지며 맞섰고, 일부는 공기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경찰과 시위대에서 모두 사망자가 나왔고, 사상자들은 총상을 입거나 수류탄 파편에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은 20일 브뤼셀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자에 대한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등 제재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부통령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최대한 자제할 것을 요청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자제를 촉구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