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크림 합병 조약’ 이후]
크림 친러 자경단과 함께 급습
심페로폴서도 소규모 무력 충돌
서방 제재 수위 강화 검토 나서자
러, “대가 치를 것” 보복 제재 위협
크림 친러 자경단과 함께 급습
심페로폴서도 소규모 무력 충돌
서방 제재 수위 강화 검토 나서자
러, “대가 치를 것” 보복 제재 위협
러시아가 서방의 반발과 경고를 무시하고 크림반도 합병 조약에 서명한 뒤 크림반도에서는 군 기지 습격과 소규모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등 긴장이 흐르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은 서로 보복 제재를 경고하며 맞서고 있다.
합병 조약 체결 하루 뒤인 19일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흑해 해군 본부를 러시아군과 친러 자경단원들이 급습해 점거하고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을 몰아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점거 과정에서 총성은 들리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민간인 복장 등으로 기지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알렉산드르 빗코 러시아 흑해함대 사령관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고 전했다.
18일에는 심페로폴에서 친러시아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우크라이나 군인 한명이 숨졌다고 우크라이나 과도정부 국방부가 발표했다. 하지만 크림공화국 당국은 친러 무장세력도 한명 숨졌다면서 의도적 공격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아직 심각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크림반도 주둔 자국군에 자위권 차원의 발포를 승인했고, 크림 당국은 우크라이나 군부대 해산을 요구하고 있어 충돌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 합병 승부수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냉전 이후 가장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각자가 다음에 어떤 카드를 꺼낼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8일 크림반도 합병 서명 몇 시간 뒤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서방 제재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위협했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전날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11명과 21명의 러시아·크림공화국 주요 인사에 대한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을 결정했고, 푸틴 대통령이 크림 합병에 서명하자 추가 제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라브로프 장관은 케리 장관과의 통화 뒤 성명을 내어 “크림 주민들은 국제법과 유엔헌장에 따라 민주적 결정을 했다”며 “미국과 유럽연합이 시행한 제재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대가 없이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는 대가가 무엇이 될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먼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시작되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따로 주요 8개국(G8)에서 러시아를 뺀 7개국 정상들끼리 만나 러시아 추가 제재를 논의할 예정이다. 18일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나라면 지금 당장은 러시아 자산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해 러시아에 실질적 타격이 될 경제 제재 카드도 동원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실제 (경제 제재를) 단행하지 않더라도, 테이블 위에 그런 위협을 안건으로 올려놓아 러시아의 경제적 확신에 타격을 주고 푸틴의 손을 비틀기를 바란다”고 짚었다. 현재 서방은 크레믈(크렘린)과 깊숙이 연결된 러시아 경제계 거물 등 100여명의 추가 제재 후보 명단을 준비해 놓은 상태다. 이밖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투자 협력 등에 관심이 지대한 점을 겨냥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서 러시아를 따돌리는 방법도 거론된다.
러시아는 크림 합병 조약까지 속전속결로 달려온 만큼 일단 협상 여지를 떠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복 제재 위협을 거론하는 등 의외의 강수를 둘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서방에 크림반도 주민투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중재할 다국적 지원그룹을 창설해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헌법 쇄신 등을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세력권에 있던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확실히 해두길 원하는 셈이다. <비비시>는 러시아의 다음 행보와 관련해 “서방과 비슷하게 비자 금지 등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동쪽과 남쪽 국경에 병력을 더 배치해 위협하거나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개입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또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가스 값을 올리거나 무역 제한을 해 이미 경제적 탈진 상태인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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