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의 퇴위가 발표된 직후 2만여명의 시민들이 마드리드의 중앙광장에 몰려나와 ‘군주제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뒤 즉위한 카를로스 국왕은 스페인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으며, 2007년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왕실의 부패 추문이 잇따라 불거지며 지지도가 급락한 가운데 퇴위를 전격 선언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카를로스 국왕 2일 퇴위 선언
내각, 왕위 승계 특별법 추진
집권당·제1야당 군주제 지지
시민들 “군주제 폐지” 시위
내각, 왕위 승계 특별법 추진
집권당·제1야당 군주제 지지
시민들 “군주제 폐지” 시위
2일 후안 카를로스(76) 국왕의 전격적 퇴위 선언을 계기로 스페인 내 군주제 찬성·반대 세력 간 균열이 불거지고 있다. 스페인 내각은 이날 카를로스 국왕의 양위 절차 논의에 곧 착수하기로 한 반면, 스페인 곳곳에선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를 열어 양위 방식을 구체화할 헌법적 조처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료들은 왕위 승계 과정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카를로스 국왕의 아들 펠리페(45) 왕세자는 이후 즉위와 함께 ‘펠리페 4세’로 불리게 된다.
같은 날 저녁 수도 마드리드 등 스페인 전역 60여 곳에서 수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군주제 존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경찰은 마드리드에서 2만여명, 바르셀로나에서 수천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11만명 이상이 참여했고, 수가 점점 불고 있다.
국민투표 청원을 주도하는 세력은 최근 창당 넉달여 만에 유럽의회 선거에서 5석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신생 정당 ‘포데모스’(우린 할 수 있다)를 비롯한 좌파 그룹이다. 포데모스는 트위터에 “우리는 시민이지, 신민이 아니다”라고 썼다. 연합좌파동맹 카요 라라 대표는 “지금이 바로 국민이 군주제와 공화제 중 택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군주제 폐지론’이 거세진 데는 왕실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깔려있다. 카를로스 국왕의 막내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가 부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데다, 국왕 자신도 2012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아프리카로 코끼리 사냥 여행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며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한 바 있다.
하지만 집권당과 제1야당이 모두 군주제를 지지하고 있어, 국민투표가 성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디언>은 “국왕의 지지율이 41%로 떨어진 반면, 펠리페 왕세자의 지지율은 66%로 안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카를로스의 퇴위를 계기로 재위 62년을 맞은 영국 엘리자베스(88) 2세 여왕의 거취에도 눈길이 쏠린다. 그러나 국왕이 사망해야 왕위 승계가 이뤄지는 영국 왕실의 전통과 여전히 왕성한 여왕의 활동 등에 비춰, 조기 퇴위 가능성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세자만 62년째인 맏아들 찰스(65) 왕세자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불쌍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럽의 군주제 국가는 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룩셈부르크·리히텐슈타인·모나코·벨기에·스웨덴·안도라와 바티칸 등을 더해 모두 12곳이다. 교황 체제인 바티칸, 군주에게 법률 거부권과 내각 해산권 등을 부여한 리히텐슈타인을 빼면, 모두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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