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관광객 항공권 없어 해외 노숙신세
러 긴급구호 불구 1만6천명 귀국못해
러 긴급구호 불구 1만6천명 귀국못해
러시아 대형 여행사가 ‘부정적인 정치·경제적 상황’을 이유로 파산하는 바람에 2만7000여명의 러시아 관광객들이 그리스와 터키 등 외국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발이 묶였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러시아 경제 전반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풀이가 나온다.
러시아 여행사 라비린트는 지난 2일 갑작스레 파산과 함께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라비린트를 통해 외국에서 휴가를 즐기던 2만7000여명의 러시아 관광객들이 귀국 항공권도 없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고 <비비시>(BBC)가 4일 전했다. 스페인과 그리스, 터키 등에선 일부 관광객들이 호텔에서 쫓겨나 노숙을 하는 상황이라고 러시아 국립 여행 감독기관 ‘로스투어리즘’이 밝혔다.
러시아에선 여행자 긴급 구호 기관인 투르포모시(투어 헬프) 등이 비상 대응에 나서 일부 관광객을 귀국시켰지만, 여전히 1만6000여명 정도가 외국에 남아 있는 실정이다. 투르포모시는 “불가리아와 이집트, 튀니지 등에서 관광객들의 귀국 항공편을 예약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대규모 관광객을 짧은 기간 동안 한꺼번에 데려올 만큼의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러시아 <이타르 타스> 통신이 전했다. 터키 <도간> 통신은 러시아 관광객 44명이 귀국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사흘 동안 안탈리아 공항에서 잠을 자면서 정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비린트는 파산을 발표하면서 “부정적인 정치·경제적 상황이 여행상품 예약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러시아 통화인)루블화 가치가 하락한 것도 러시아인의 구매력에 타격을 줬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가 군인과 안보 분야 공무원 등의 외국 여행을 금지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라비린트는 성수기를 앞두고 전세기 좌석을 대규모로 예약해 놨다가 해외 여행객 모집에 차질이 생기면서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에 14억루블(약 400억원)의 빚을 졌다.
서방의 경제제재 여파로 러시아 여행업계는 최근 3주 동안 라비린트를 포함해 여행사 4곳이 파산하는 등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지난해 9월 이후 11% 하락한 데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이밖에도 독일 정부가 러시아에 1억유로 규모의 군사훈련장을 건설해 주기로 했던 계약을 중단하고, 아에로플로트의 계열사인 도브롤레트 항공이 운항을 중단하는 등 경제제재의 파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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