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범죄 조사기구 설치해
차우셰스쿠 관료들 잇따라 기소
차우셰스쿠 관료들 잇따라 기소
공산정권 시절 루마니아 ‘람니쿠 서라트’ 교도소는 정치범에 대한 고문과 가혹행위로 악명 높았다.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에 반대하다 잡혀온 반체제 인사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정권을 비판하는 책을 냈다가 수감된 한 장군은 몸무게가 30㎏으로 줄어 뼈만 남은 상태가 돼 풀려났다.
1956~63년 이 교도소 소장을 지낸 알렉산드루 비시네스쿠(88)에 대한 재판이 24일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열렸다. 루마니아 검찰은 각종 고문과 정치범 12명의 옥사에 개입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차우셰스쿠의 공포통치를 떠받쳤던 공산 관료 가운데 그가 처음으로 법의 심판대에 섰다는 점은 놀라움을 안긴다. 차우셰스쿠가 민중혁명으로 축출돼 처형된 지 25년이 지나서야 정권 참여자들의 악행에 대한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1989년 민중혁명으로 차우셰스쿠 부부와 몇몇 핵심 참모들이 처형됐다. 하지만, 수많은 관료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채 무사히 퇴직했다. 꼬박 꼬박 연금을 받았고, 심지어 과거 연줄을 밑천으로 부자가 된 이들도 꽤 된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부쿠레슈티대 역사학과 아드리안 치오로이안누 교수는 “1990년대에 우리는 (과거사 심판보다) 더 우선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사 청산에 나서야 할 때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루마니아 정부는 2006년 ‘공산주의범죄 조사기구’를 설치한 데 이어 2012년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철폐했다. 공산주의범죄 조사기구는 애초 210명의 청산 대상 명단을 내놨으나 검찰 기소를 끌어내지 못하자, 2013년 35명을 추려 제시했다. 비시네스쿠에 이어 노동수용소 소장을 지낸 이온 피치오르가 두번째로 재판정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치오로이안누 교수는 “이번 재판은 우리 사회에 ‘역사적 범죄를 망각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신호를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시네스쿠는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날 재판정에 출두하면서 자신을 기소한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한 마디를 던진 뒤 입을 꾹 닫았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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