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시기 옛 소련 군복 차림을 한 러시아군 병사들이 당시 쓰던 소총을 들고 7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1941년 11월7일은 나치 독일군의 침략에 맞서 소련군이 붉은광장에서 동부 전선으로 출발한 날이다. 이날 73주년 기념일을 맞아 6000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퍼레이드를 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싱크탱크 ‘유러피언 리더십…’ 분석
러-나토국, 8개월간 일촉즉발 40건
올 3월 러 정찰기·여객기 충돌 위기
나토회의 겨냥 러 미사일 훈련도
러-나토국, 8개월간 일촉즉발 40건
올 3월 러 정찰기·여객기 충돌 위기
나토회의 겨냥 러 미사일 훈련도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이 냉전 수준에 육박하는 군사적 벼랑끝 대치를 벌이고 있다는 유럽 싱크탱크의 진단이 나왔다. “세계가 신냉전으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이라고 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의 경고와 궤를 같이 한다.
최근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이 군사 대치 상황은 발트해와 흑해 등 양쪽이 경계를 맞댄 지역은 물론 캐나다 영해 인근 공해상에서도 빚어졌다. 싱크탱크인 ‘유러피언 리더십 네트워크’는 <위험한 벼랑끝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군용기의 나토 회원국 영공 침범과 같은 ‘고도의 자극적인’ 군사적 ‘근접 조우’가 최근 8개월간 40여차례나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이 냉전 이래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10일 보도했다.
보고서는 올해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으로 3가지를 꼽았다. 3월3일엔 스칸디나비아항공 여객기와 러시아 정찰기가 충돌할 뻔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32명을 태우고 이륙한 여객기가 스웨덴 말뫼 남동쪽 80㎞ 지점에서 러시아 정찰기와 근접했으나 간신히 충돌 위기를 넘겼다. 당시 러시아 정찰기는 항공기의 위치 정보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무선교신장치를 꺼둔 상태였다. 시계가 좋았고 조종사가 주의를 기울였기에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9월엔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캐나다 인근 래브라도해에서 순양미사일 발사 훈련을 벌였다. 당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겨냥한 도발 행위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래브라도해에서 순양미사일을 쏘면 오타와와 뉴욕, 워싱턴, 시카고, 노포크의 미 해군 기지 등이 사정거리에 든다.
9월7일 흑해에서도 위험한 근접 조우가 일어났다. 캐나다 호위함 토론토호가 300m 거리에서 러시아 군용기를 포착하고 즉각 대응 공격용 레이다를 고정시켰다. 러시아 군용기가 비무장 상태여서 상황이 더 고조되진 않았지만, 만약 무장한 군용기에 의해 근접 시도가 이뤄졌더라면 함장이 자위 차원에서 발포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짚었다.
보고서는 이밖에도 9월5일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보안국 요원 납치 사건, 덴마크의 유인도에 대한 러시아의 모의 폭격 훈련, 10월 스웨덴 영해에서의 러시아 잠수함 추적 사건 등을 군사 대치 사례로 들었다. 나토 쪽은 러시아가 나토의 경계 태세를 시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침범 행위를 증가시키는 냉전시대의 긴장 고조 방식으로 되돌아갔다고 비난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국방부는 올 10월까지 발트해에서 이뤄진 나토 공군기의 긴급 대응 출격이 86차례에 이르며, 이는 지난해 전체 비상 출격횟수의 거의 2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러시아 공군기에 대한 나토 공군기의 진로 차단 횟수도 지난해의 3배가 넘는 100여차례에 이르렀다.
보고서는 현재 양쪽은 ‘재앙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가까스로 피해가고 있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나토군 총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영국군의 존 맥콜 장군은 “잠재적 계산 착오나 상황 악화는 일어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군사적 대치 과정에서 순간적 판단 착오 등이 개입되면 실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러시아와 나토 간 예기치 않은 적대행위들로 발생한 긴장상황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긴급 외교 채널 가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무력 충돌을 피하는 방법으로 러시아 지도부가 군사행동에 따른 비용을 재평가할 것과 양쪽 간 군사 대치 문제를 다룰 의사소통 시스템 마련 등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중국과 일본이 최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관련한 위기관리 메카니즘 구축에 합의한 점을 언급한 뒤 “바로 이것이 지금 유럽에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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