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출신의 반체제 망명 극작가 게오르기 마르코프
공산정권 피해 영국으로 떠난뒤
1978년 비밀요원 ‘우산총’에 숨져
동상 제막…“영원히 소피아의 일부”
1978년 비밀요원 ‘우산총’에 숨져
동상 제막…“영원히 소피아의 일부”
1978년 9월7일 저녁 영국 런던의 워털루 브리지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던 불가리아 출신의 반체제 망명 극작가 게오르기 마르코프(사진)는 오른쪽 허벅지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같은 줄에 서 있던 한 남성이 우산을 떨어뜨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체구의 이 남자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재빨리 도로를 건너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통증도 곧 사라졌다. 마르코프는 예정대로 <비비시>(BBC) 방송국으로 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불가리아를 철권통치하던 토도르 지프코프 공산정권을 피해 1969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어 <비비시> 라디오와 미국이 지원하는 <라디오 자유 유럽> 등에 고정 출연하며 정권 비판을 계속해온 터였다.
다음날 새벽 고열이 그를 덮쳤다. 병원으로 옮겼으나 패혈증으로 증세가 악화됐다. 나흘 만인 9월11일 그는 숨을 거뒀다.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 결과 그의 허벅지에선 직경 1.5㎜짜리 금속 탄알이 나왔다. 작은 구멍이 난 탄알 안에선 아주까리 씨앗에서 추출하는 독극물인 ‘리친’이 발견됐다. 2005년 불가리아의 일간 <드네브니크>는 불가리아 비밀경찰의 파일을 입수해, 불가리아 비밀요원이 옛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제공받은 특수 우산총으로 마르코프를 암살했다고 폭로했다.
암살된 지 36년만에 마르코프의 동상이 고국의 수도인 소피아에 세워졌다. 마르코프의 영국인 부인 애너벨은 “남편은 단 24시간만이라도 고국 땅을 밟을 수 있기를 꿈꿨다”며 “이제 그는 영원히 소피아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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