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안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몇달새 러시아 군용기들이 노르딕 5개국(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과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영공을 침범해 해당국 전투기들이 긴급발진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으로 유럽에선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만큼 군사적 긴장이 팽팽해지고 있다.
지난 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북유럽 지역 10개 회원국과 나토 비회원국인 스웨덴이 북해에서 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2주간의 합동군사훈련을 시작했다. 같은 날 핀란드는 예비군 90만명에게 국가안보 비상사태 시의 임무를 알려주는 편지를 발송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핀란드를 포함한 노르딕 5개국 국방장관이 방위협력 강화를 뼈대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러시아를 의식한 움직임이다.
유럽 방위협력의 핵심은 군사동맹인 나토다. 그러나 핀란드에서 나토 가입은 아직 ‘뜨거운 감자’도 아니다. 핀란드가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 자유롭다거나 경계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정도가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 역시 만일을 대비한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핀란드군 최고 지휘부의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축약해 보여준다.
야르모 린드베리 핀란드군 최고사령관은 지난달 핀란드 국영방송 <윌레>(yle)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 사태의 결과로 핀란드군의 작전 환경도 바뀌고 있다”며 “러시아의 군사활동이 핀란드 국경 인근에서 늘고 있어 우리의 (군사적) 대비 태세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아직까지 러시아가 핀란드의 안보에 결정적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핀란드와 노르딕 국가들의 방위협력도 전혀 새로울 게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지난 2월 핀란드 언론이 보도한 나토 가입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찬성 26%, 반대 43%, 잘 모르겠다 32%였다. 나토 가입 찬성론이 응답자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것도 최근 러시아의 군사활동이 부쩍 늘면서 늘어난 수치다. 2014년 초 여론조사에서는 ‘나토 가입 찬성’ 의견이 18%에 그친 반면, 반대 의견이 51%로 절반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안보 위기가 길어지면서 핀란드 국민들의 나토 가입에 대한 인식도 미묘한 변화를 보이긴 했다. 그러나 찬성 의견의 증가폭보다는 유보적 태도의 증가폭이 훨씬 크다.
테이야 틸리카이넨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장은 “핀란드인들은 나토를 냉전체제의 낡은 유물로 여기며 가입 필요성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 이후 핀란드와 러시아의 관계는 매우 실용적인 관점에서 유지됐으며, 쇼핑·관광·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독일과 스웨덴에 이어 핀란드의 세번째 교역상대국이다. 틸리카이넨 소장은 “핀란드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고 다른 유럽 국가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다. 핀란드는 언제나 다자외교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유하나 아우네슬루오마 헬싱키대 유럽학네트워크 소장은 “냉전 시기 핀란드가 취했던 중립성은 안보정책의 목적이나 가치라기보다 도구였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인들은 동쪽 국경에 어려운 이웃나라(러시아)와 맞대고 사는 것에 익숙하다”며 “그래서 냉전 이후에도 의무징병 시스템을 지속했고, 국방 투자를 늘렸으며, 공군력을 완전히 현대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선의 안보 시나리오는 미국-러시아-유럽의 평화 공존이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며 “정치적 대화와 군사적 대비를 병행한 핀란드의 접근법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핀란드 외무부는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핀란드의 입장, 안보, 복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 중 국가안보 분야는 “지역안보 협력을 강화하되 군사동맹은 배제한다”로 요약된다. 보고서는 “러시아가 군사동맹국이 아닌 이웃들에 개입하면서 다양한 층위의 공공연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며 “핀란드는 부인할 수 없는 서방의 일원이지만, ‘서방’으로 정의되고 방어되는 어떠한 형태의 협력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중립 노선을 명시했다. 대신 “핀란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주국방 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는 국제협력에 참여하는 기본적 전제조건이다”라고 강조했다.
헬싱키/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