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테러정국에 당 안팎 거센 도전
‘정통 좌파’로 꼽히는 제러미 코빈(66) 영국 노동당 대표가 당 안팎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계기는 영국 정부의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 공습 방안이다.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2일 영국의 시리아 공습 참가안을 하원 표결에 부쳤는데, ‘반전주의자’ 코빈의 반대에 불구하고 노동당 안에서도 상당수 의원들이 시리아 공습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 내에서는 그동안 이라크의 이슬람국가만을 상대로 공습을 해왔으나 지난달 13일 프랑스 파리 테러를 계기로 시리아로 공습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코빈 대표는 지난달 30일 예비내각 각료들과 고성이 오가는 격론 끝에 정부의 시리아 공습안에 대해서 노동당 의원들이 자유투표를 하도록 결정했다. 자유투표를 허용한 이유는 노동당 내 상당수 의원들이 시리아 공습에 찬성하며 코빈의 공습 반대론에 대해 반발했기 때문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노동당 하원 의원 231명 가운데 60여명이 시리아 공습에 찬성하고 있다.
당 밖에서는 캐머런 총리가 1일 보수당 의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시리아 공습안 찬성을 독려하며 “제러미 코빈과 한줌의 테러리스트 동정론자들”이라고 공격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전에도 “코빈은 안보를 위협하고, 테러리스트에 공감하며, 영국을 증오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졌다”고 말한 바 있다.
‘시리아 공습’ 싸고 노동당 내분
각료들과 격론 끝 자유투표 허용
당 하원의원 231명중 60명 찬성 뜻
전 내무장관은 대표직 사임 거론
캐머런 “테러 동정론자” 공격도
코빈 대표는 1일 <가디언> 기고를 통해서 시리아 공습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시리아 공습이 성공하려면 신뢰할 만한 지상군과의 공조가 필요한데, 시리아 내에 믿을 만한 지상군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코빈은 “캐머런은 영국의 시리아 공습이 시리아 내전의 정치적 해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의) 정치적 해결이야말로 이슬람국가를 패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군사적 공격보다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코빈은 캐머런의 접근 방식은 “폭격부터 하고 대화는 나중에 하자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노동당 예비내각의 외무장관인 힐러리 벤 의원은 “우리 국민과 나라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 존재한다”며 시리아 공습 찬성 의사를 밝혔다. 벤은 근거로 튀니지 휴양지 수스 테러와 파리 테러, 그리고 러시아 여객기 추락, 레바논 베이루트와 터키 앙카라 테러를 들었다. 벤은 2일 시리아 공습안 투표에 앞서 예정되어 있는 찬반 토론에도 나설 예정이다. 같은 노동당이지만 대표와 예비내각 외무장관이 핵심 안보 현안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톰 왓슨 노동당 부대표도 <비비시>(BBC) 방송에 “나는 시리아에서 지시를 받는 임박한 테러 위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벤이 영국에 임박한 안보 위협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나도 동의한다”고 코빈에 반기를 들었다. 예비내각 각료 중 국방장관 마리아 이글 의원도 시리아 공습 찬성파다.
비주류인 코빈과 당 주요 인사들 사이의 갈등은 기본적인 성향 차이에서도 기인한다. 코빈은 기본적으로 반전주의자다. 그는 최근까지 반전단체인 ‘전쟁을 멈추라’(Stop the War)의 의장으로 있었다. 코빈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당이 집권하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트라이던트 핵잠수함의 현대화 계획 추진에도 반대했다. 전 내무장관인 피오나 맥태거트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코빈의 시리아 공습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의 대표직 사임까지 거론했다.
여론은 캐머런 총리와 코빈 대표 모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영국 <더 타임스>가 2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리아 공습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48%로 지난주 59%보다 되레 떨어졌다. 코빈이 노동당 대표직을 잘 수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24%만이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는 지난주 30%보다 하락한 것이다.
코빈이 당장 사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지도력에 흠집이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노동당 주류가 포함된 예비내각 각료들은 이번 주의 사건들이 코빈 대신 다른 인물을 새 대표로 세울 수 있게 만드는 촉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이들은 코빈이 득표율 약 60%로 지난 9월에 당 대표에 당선됐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당 대표 교체를 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코빈에 반대하는 이들은 내년 5월 런던 시장 선거 때 노동당이 패배해 코빈의 지도력이 더욱 흠집이 날 때까지 일단은 기다릴 것이라고 <비비시>는 내다봤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각료들과 격론 끝 자유투표 허용
당 하원의원 231명중 60명 찬성 뜻
전 내무장관은 대표직 사임 거론
캐머런 “테러 동정론자” 공격도
영국 노동당 내 시리아 공습 찬반 분포와 근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