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의 저주? 아일랜드도 양당체제 붕괴

28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제1야당인 공화당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열렸던 총선 개표 결과를 다룬 신문을 읽고 있다. “정치적 지진”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총선 기사가 보인다. 더블린/AFP 연합뉴스

통일·공화 총선 참패…연정 미지수
스페인처럼 기성 정당들 외면당해

‘구제금융 우등생’으로 꼽혔던 아일랜드에서도 총선 결과 전통적인 양당 체제가 흔들렸다.

아일랜드 공영방송 <아르티이>(RTE)에 따르면, 29일 개표율 65.2% 기준으로 총 158석 가운데 우파인 집권 통일아일랜드당이 47석 그리고 연정 파트너였던 노동당이 6석 확보에 그쳐, 집권 연정이 무너졌다.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통일아일랜드당과 함께 권력을 주고받아온 중도 우파인 공화당도 43석 확보에 그쳤다. 나머지 의석들은 군소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이 고루 나눠가졌다. 2011년 총선에서 14석을 얻었던 신페인당은 이번엔 22석을 확보했다. 지난해 연합해 출범한 급진좌파 ‘긴축반대연합-이익 이전에 사람’(AAA-PBP)이 5석을 확보했으며, 무소속도 최소 16명이 당선됐다.

아일랜드 언론은 선거 결과를 “정치적 지진”이라고 표현했으며, 긴축반대연합 소속 의원인 폴 머피는 “양당 체제의 붕괴”라고 말했다. 통일아일랜드당과 공화당 모두 연정 구성을 위해 나서겠지만, 쉽지 않다. 신페인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과반에 가까워지지만, 양당 모두 신페인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3월10일 새 총리를 뽑아야 하는데 이때 연정 구성이 되지 않으면 총선을 다시 치를 수도 있다.

아일랜드뿐 아니라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았던 국가들에서는 모두 기성 정치체제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으로, 지난해 총선에서 30여년 동안 계속되어 오던 양당 체제가 붕괴하고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 정당인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가 제3당으로 떠올랐다. 그 뒤 스페인에서는 제2당인 사회당이 신예 중도 우파 ‘시우다다노스’(시민들)와 연합하는 데 합의했다. 3월2일에 사회당 대표인 페드로 산체스가 총리 후보로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사회당과 시우다다노스 의석을 모두 합쳐도 과반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연정 구성이 성공할지 불확실하다.

아일랜드, 스페인과 함께 ‘돼지들(PIGs)’라는 경멸적인 명칭으로 불렸던 그리스와 포르투갈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리스에서는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지난해 집권했고, 포르투갈에서도 집권 중도 우파 사회민주당이 지난해 총선 뒤 11일 만에 실각했다.

아일랜드는 유럽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 중에서 성적표로는 1등이었지만, 구제금융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2013년 구제금융을 졸업한 아일랜드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6.9%로 추정된다. 유럽연합 전체로 따져도 경제성장률로는 1위다. 하지만 이는 기술적 회복일뿐 일반 시민들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영국 <가디언>은 짚었다. 부동산값은 치솟고, 사회복지 혜택은 줄어들었으며, 이는 상당수 시민들이 기존 정치권에 등을 돌린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조기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