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지델 지음이원희 옮김/작가정신
코코 샤넬은 진짜로 나치의 첩자였을까?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친 프랑스의 가브리엘 코코 샤넬(1883~1971)이 나치의 협력자였다는 주장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의혹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문건이 처음으로 공개돼 눈길을 끈다.
프랑스의 역사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첩보기관,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 이끌던 레지스탕스, 프랑스의 친독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 등이 펼친 지하작전의 양상을 보여주는 문건 수 천 점을 공개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6일 전했다. 대부분 편지, 보고서, 전신, 사진 등 희귀 자료들로, 파리 외곽의 한 중세시대 성곽에 보관돼 있다가 최근에야 발견됐다.
자료들 중에는 나치 정보기관의 레지스탕스 대원 소탕 공작, 드골 망명정부의 전범 추적, 프랑스 정보기관이 나치 협력자로 의심한 유명 인사들에 대한 기록도 포함됐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11월 레지스탕스 정보기관은 다음과 같은 메모를 작성했다.
“마드리드의 한 정보원은 샤넬이 1942~1943년 사이 독일의 귄터 폰 딩클라게 남작의 정부 겸 공작원이라고 알려왔다. 딩클라게는 1935년 스페인 주재 독일대사관에서 선전 전문가로 일했는데, 우리는 그가 첩보요원이라고 의심한다.” 메모에는 코코 샤넬이 독일 첩보기관의 공작원으로 등록됐다는 내용도 담겼다.
비밀문서 관리자인 프레데리크 크기뇌르는 “독일의 관점에서 보면, 샤넬을 공작원으로 등록한 것은 그가 정보 제공과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샤넬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실제로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70년 동안 묻혀있던 문건들의 중요성과 방대한 분량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 문건들은 앞으로 분류 작업을 거쳐 일반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전쟁이 끝난 뒤 샤넬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의 눈길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1954년에 파리로 돌아와 패션 전문가로 활동하며 세계의 유행을 주도했다. 그는 1971년 1월 봄 콜렉션을 준비하던 중 87살로 사망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가브리엘 코코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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