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프랑스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밤샘 시위에 참석한 시위대들이 연단을 향해 앉아 발언을 듣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밤샘 시위는 리옹, 툴루즈 등을 비롯해 프랑스 전역의 60여개 도시에서 이어지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사회당 정부 ‘노동법 개정안’이 불지펴
높은 청년실업, 친기업 행보에 반발
날마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집결
밤샘시위, 리옹 등 60개 도시로 번져
구심점 없지만 시위 확대 양상에 촉각
높은 청년실업, 친기업 행보에 반발
날마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집결
밤샘시위, 리옹 등 60개 도시로 번져
구심점 없지만 시위 확대 양상에 촉각
“사회당 정부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정책을 제시했어요. 청년 실업이나 기후 변화와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거죠.”
35살 마티외는 저녁이 되면 파리의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 한 켠에서 사람들과 함께 혁명가를 부르는 그는 전형적인 ‘청년 실업자’다. 지난해 프랑스 청년 실업률은 25.7%다.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유연성을 높인다며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마티외는 “노동법 개정은 이번 시위의 결정타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높은 청년 실업률, 파리 테러 이후 계속되는 국가 비상사태, 사회당 정권의 친기업적 행보에 분노한 프랑스 청년들이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매일 밤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밤샘 시위’ (nuit debout·뉘드부)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노동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시위대들은 시위가 끝난 뒤 광장으로 모여 다음날 새벽까지 토론을 했고, 지금까지 밤샘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수천여명의 시민들은 무리지어 자유토론을 하며 광장을 ‘점령’한다. 광장 한 켠에 있는 칠판에는 헌법 개정 문제부터 여성 인권, 파나마 페이퍼, 난민 문제까지 다양한 토론 주제들로 채워진다. 누구나 발언할 수 있지만, 2분의 제한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참가자들은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하면 두 팔로 동그라미를, 동의하지 않는다면 가위표를 그린다.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작된 밤샘 시위는 툴루즈, 리옹, 낭트 등 프랑스 전역 60여개 도시로 확대됐다.
밤샘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은 프랑스 사회당 정권의 ‘우클릭’ 정책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은다. 해고를 쉽게 하고, 노동시간 제한에 예외를 두는 것을 뼈대로 한 노동법 개정안과, 테러 혐의를 갖고 있는 사람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을 명시한 헌법 개정안은 특히 젊은층 사회당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지난 8일 밤샘 시위에 참여한 조셀랭(26)은 “한때 올랑드 정부가 약속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졌고, 사람들의 분노가 지난 몇 년간 쌓였다”며 “테러 이후 시민들을 감시하는 법안은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사회당 정부도 이번 시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1일 마뉘엘 발스 총리는 청년 취업 지원금으로 4억~5억유로(5200억~6500억원)를 배정하겠다고 발표하며 성난 민심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청년단체들은 노동법 개정안이 철회될 때까지 밤샘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으며, 오는 28일 또 대규모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말레크 부티 프랑스 하원의원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을 찍었던 청년 유권자들이 지금 거리로 뛰쳐나와 ‘우리는 어리석었다.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며 “밤샘 시위는 올랑드가 직면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대선 후보 여론 조사에서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16%에 그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를 키워낸 2011년의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자들’이라는 뜻) 시위처럼, 이번 밤샘 시위가 대안적인 좌파 정당을 만들어낼 ‘제2의 인디그나도스’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4일 한 여론조사업체가 18~30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밤샘 시위가 청년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고 응답한 것을 보면, 시위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도 높은 상태다. 여론조사업체 ‘비아보이스’ 대표인 프랑수아 미케마르티는 “밤샘 시위는 아직 조직화되지 않았지만, 사회당 정부는 시위가 커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명확한 구심점이 없다는 것은 밤샘 시위의 한계로 지적된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청년들은 자신이 시위의 대표자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름 전체를 공개하지 않으며,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시위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깃발이나 팻말도 세우지 않는다. 이는 단체나 노조가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프랑스의 시위 문화에서 매우 드문 광경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베르 오지앵은 “68혁명 당시에는 자본주의라는 분명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의 밤샘 시위에서는 매우 분산된 주제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명확한 적이 없다면, 또 다른 68혁명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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