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뒤 넉달 동안 정부 구성에 실패한 스페인에서 사상 초유의 재총선이 열릴 판이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연말 총선에서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양당 체제가 붕괴하고, 창당 2년도 안 된 좌파 정당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가 3위에 오르는 정치지형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스페인 정치계를 30년 이상 지배한 구체제를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이 과반을 넘기지 못하고 정당간 의견 차이가 커 총선 이후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지 못했다.
이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는 26일 성명을 통해 더이상 총리 후보를 지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왕실은 “(총리가 되는데) 필요한 지지를 확보한 후보가 없다는 점을 폐하는 확인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헌법상 국왕은 총리 후보를 지명하고 후보는 의회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다음달 2일까지 새 총리를 뽑지 못하면 오는 6월23일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 국왕이 총리 후보 지명을 포기한 이상 재총선이 확실시된다.
펠리페 6세가 총리 후보 지명을 포기한 이유는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은 정당이 없는데다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연정을 구성한 정당도 없기 때문이다. 펠리페 6세는 성명 발표 전 이틀 동안 지난해 총선에서 1위부터 4위까지를 차지한 국민당, 사회노동당, 포데모스, 시우다다노스(시민들) 대표를 면담했으나, 연정 구성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을 뿐이다.
펠리페 6세는 지난해 총선 뒤 1위 정당인 국민당의 대표 마리아노 라호이에게 연정 구성을 요청했으나, 라호이는 이를 거절했다. 펠리페 6세는 이후 2위를 한 사회노동당(90석) 대표 페드로 산체스에게 연정 구성을 요청했다. 산체스 대표는 지난 2월 총선에서 4위를 한 친시장적 정당인 시우다다노스와 손을 잡는데까지 성공했다. 산체스 대표는 포데모스에도 연정을 제의했지만, 포데모스는 거절했다. 시우다다노스의 협조만으로는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없었던 사회노동당도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포데모스가 같은 좌파 계열인 사회노동당의 손길을 뿌리친 일은 예상된 것이었다. 2014년 창당한 포데모스는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사후 형성된 기존 스페인 정치체제를 부정하고 새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진 좌파 정당이지만 사회주의 같은 이념에 호소하는 대신에 기존 기득권층을 일컫는 ‘카스트’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카스트에는 중도 좌파인 사회노동당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6월 재총선 뒤 스페인에서 새 정부가 구성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재총선에서도 국민당이 또 1위는 하겠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 온라인 정치매체 <폴리티콘>의 편집장 호르헤 갈린도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또 선거를 해도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반을 획득하는 정당도 없고 연정 구성도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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