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스트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이 빈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빈/EPA 연합뉴스
판데어벨렌, 불과 3만표차 신승
극우 대통령 등장 우려 확산
반이민 내건 자유당 호퍼 눌러
극우 대통령 등장 우려 확산
반이민 내건 자유당 호퍼 눌러
“나는 난민의 자식이다.”
23일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정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당선된 무소속 후보 알렉산더 판데어벨렌(72)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해왔다. 반이민을 전면에 내세워 돌풍을 일으킨 극우 자유당 후보인 노베르트 호퍼(45)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판데어벨렌은 1944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네덜란드계 러시아인 아버지와 에스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판데어벨렌의 부모는 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체제를 피해서 난민으로 오스트리아에 들어와, 판데어벨렌을 낳았다. 1945년 옛 소련 군대가 당시 나치 독일과 합병상태였던 빈으로 진군하자, 이를 피해 남부 티롤에 정착했다. 판데어벨렌의 별명 중 하나도 러시아어로 알렉산더를 뜻하는 애칭인 “샤샤”다.
빈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인 판데어벨렌은 오스트리아 양당 정치의 축 가운데 한 곳인 사회민주당에 가담했다가 이후 녹색당에 참여한 인물이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넘게 녹색당 대표를 지냈을 만큼 녹색당의 간판이었다. 2008년 총선에서 녹색당 득표율이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하락하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녹색당의 지지를 받았다.
판데어벨렌이 당선된 것은 그의 인기가 높아서라기보다는 극우 후보의 당선을 우려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열린 대선 1차 투표에서 호퍼가 36%가 넘는 득표율로 1위를 했고 판데어벨렌은 20%대로 2위에 그쳤다. 결선 투표에서는 판데어벨렌이 50.3% 득표율로 호퍼(49.7%)를 불과 3만1000표 차이로 이겼다. 일반 투표소 개표 결과만으로는 판데어벨렌의 패배였지만 부재자 투표 합산 결과 가까스레 역전에 성공했다. 판데어벨렌도 선거운동 기간에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호퍼를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정부 해산권이 있지만, 상징적 국가 원수 성격이 더 강하다. 실질적 권한은 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이번 오스트리아 대선은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은 유럽 각국 극우 정당의 세력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했다. 자유당의 현재 인기도만 놓고 보면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판데어벨렌은 23일 당선 뒤 연설에서 “우리는 국민의 공포와 분노에 대처하는 새로운 정치 체계와 대화 문화가 필요하다”며 “모든 오스트리아 국민을 위한 초당적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