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사상 첫 여성 로마 시장으로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가 20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오른쪽에 오성운동 로고가 보인다. 로마/AP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반체제 성향인 ‘오성운동’(M5S) 후보로 나선 비르지니아 라지(37)는 19일 지방자치단체장 결선 투표에서 67.2%를 득표해 집권 민주당의 로베르토 자케티(32.8%)를 가볍게 이겼다. 토리노 시장 선거에서는 오성운동의 31살 여성 후보인 키이라 아펜디노가 54.5%를 얻어 민주당의 거물급 현직 시장인 피에로 파시노(45.4%)를 꺽는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고 <라 레푸블리카>가 전했다.
변호사 출신 라지는 로마의 고질적 문제인 대중교통 혼란과 쓰레기 처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5년 전 정치에 입문한 라지는 이번 로마 시장 선거전까지만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생활 문제들에 집중한 선거운동으로 승리를 거뒀다. 7살 아들이 있는 그는 “아들이 더 좋은 도시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이 출마 이유”라고 말해왔다.
라지의 낙승 배경에는 시민들이 기존 로마 시당국과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탓이 컸다. 로마에서는 2014년 마피아와 정치인이 결탁해 시 자금을 횡령한 스캔들이 발생한 적이 있다. 더구나 집권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그나치오 마리노 전 시장은 지난해 공금 수만유로를 식사비로 사용한 것 때문에 사임했고, 이후 마테오 렌치 총리가 임명한 시장 대행이 시정을 이끌어왔다. 라지는 승리 뒤 “새 시대가 우리와 함께 시작한다”고 말했다. 토리노 시의원인 아펜디노는 장관까지 역임했던 거물인 파시노(66)에게 결선투표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피아트의 본사가 있는 토리노는 원래 중도좌파 민주당의 텃밭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에는 더 뼈아픈 패배였다.
오성운동은 2009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 등이 만든 정당이다. 오성운동에서 오성은 5개의 별인데, 이는 공공 수도, 지속가능한 교통, 지속가능한 발전,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할 권리, 환경주의를 의미한다. 또 유럽 통합에 회의적이고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운다. 오성운동은 초기엔 인터넷 토론 포럼을 위주로 성장했으며 당보다는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했다. 주요 후보를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뽑고 정치는 직업이 될 수 없다며 선출직에 2번 이상 나서지 못하게 했다. 이탈리아 일부 지자체의 수도 민영화 시도를 비판하는 등 진보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오성운동은 우파적인 주장도 많이 한다. 중심 인물인 그릴로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이민자 자녀의 이탈리아 국적 부여를 반대한다. 유럽의회의 오성운동 의원들은 영국독립당,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정당이 속한 ‘자유와 직접민주주의’(EFD) 그룹 소속이다.
이때문에 오성운동은 좌우파 개념으로 분류하기 힘들다. 오성운동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성운동은 그리스의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스페인의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시리자와 포데모스처럼 좌파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성운동을 소수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포퓰리스트 정당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영국 작가인 니콜라스 파렐은 오성운동의 중심적 인물인 그릴로가 기존 정치체제와 의회를 강렬히 부정했던 베니토 무솔리니와 비슷하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오성운동은 하원 630석중 91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약 27%로, 약 30%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집권 민주당에 이어 2위를 하고 있다. 라지는 앞으로 연간 예산의 갑절에 해당하는 130억유로(약 17조1400억원)의 부채를 짊어진 로마시를 이끌어 가야한다. 당선자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오성운동이 다수당이 될지 여부도 달려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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