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공관 다우닝가 10번지 대문. 영국 총리실 누리집
13일(현지시각) 영국의 새 총리로 공식 취임한 테리사 메이(59)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우리는 유럽연합을 떠나면서 새로운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취임 포부를 밝혔다. 메이는 10번지라고 선명하게 적힌 대문 앞에서 남편 필립과 함께 활짝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
메이가 총리로서 포부를 밝힌 다우닝가 10번지는 영국 의회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곳으로, 280여년간 영국 총리들이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10번지라고 적힌 대문은 <러브 액추얼리> 등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데, 백악관이나 청와대와 달리 대문 겉모양은 일반 가정집과 비슷하다.
13일 영국 새 총리로 취임한 테리사 메이와 남편 필립이 런던 다우닝가10번지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다우닝가는 런던에 관광을 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르는 트래펄가 광장에서 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쪽으로 보도를 따라 걷다보면 나오는 매우 개방된 장소에 있다. 10번지에는 총리 공관이 있으며 11번지는 재무장관 공관, 12번지에는 하원 원내대표 공관이 있어서 정부 주요 구성원들이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셈이다. 10번지 총리 공관은 다우닝가 안으로 들어가야 나오는데, 외관은 3층짜리 벽돌집으로 평범한 가정집이다. 다우닝가 앞은 런던 시내 차도 한복판이고 보도도 넓지는 않다. 관광객들이 평소에도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다.
지난달 24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탈퇴가 결정이 나자 25일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날 오전 다우닝가 앞 보도에는 전세계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 시위대, 그리고 관광객 백여명까지 한꺼번에 몰려들어, 좁은 보도를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난달 24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로 가는 길목 도보에 취재진과 관광객, 유럽연합 잔류파 시위대가 엉켜있다. 이날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다음날이었다. 한겨레 자료 사진
다우닝가 10번지의 역사는 올리버 크롬웰 파였다가 뒤에 왕정복고파로 돌아선 조지 다우닝이 1682년 이곳에 타운하우스를 지은데서 시작한다. 애초 가정집으로 지은 건물이라 출발부터 백악관이나 청와대와는 달랐다.
다우닝가라는 거리 이름은 다우닝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성제임스공원과 인접하고 의사당까지는 걸어갈 수 있으며 버킹엄궁과도 가까운 이곳은 런던의 요지였다. 다우닝 본인은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675년 숨졌기 때문에, 다우닝가 10번지에 산 적은 없다.
다우닝가 10번지가 영국 민주주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다우닝이 숨진 지 50여년 뒤인 1733년 조지 2세가 영국 최초의 총리라고 알려진 조지 월폴에게 이 집을 주면서부터다. 월폴은 이 집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차기 총리들이 이어받아서 공관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월폴 이후 영국 총리들은 오랫동안 다우닝가 10번지를 총리 관저로 사용하지 않았다. 원래 지반이 약한 곳에 지었고 건물이 낡아서 살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마루가 휘어지고 벽과 굴뚝에는 금이 가 있을 정도였다.
다우닝가 10번지가 총리 공관으로 실질적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2년 제임스 밸포어 총리 때부터다. 물론, 이후에도 총리들이 여러 이유로 다우닝가 10번지에 살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총리 공관이자 영국 의회민주주의 상징 역할을 굳혔다. 윈스턴 처칠은 인전상의 이유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다우닝가 10번지가 아닌 다른 벙커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우닝가 10번지에 자주 나타나서 승리의 브이(V)자를 들어보이곤 했다. 영국 정부와 내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1943년 윈스터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승리의 브이자를 펼쳐보이고 있다.
주거 공간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자녀가 4명이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다우닝가의 다른 집에서 살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전통적으로 재무장관 관저로 사용되는 11번지에 살기도 했다. 다우닝가 10번지의 유명한 대문도 원래는 나무로 만든 평범한 것이었으나, 1991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총리 공관에 박격포 공격을 한 이후 철제 대문으로 바뀌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1985년 다우닝가 10번지를 “국가 유산 중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 중 하나”라고 말했다.
13일 영국 총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캐머런도 다우닝가 10번지 대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총리에 오른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와 자녀 셋과 함께 10번지 대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이곳은 지난 6년 동안 매우 사랑스러운 집이었다”고 말했다.
13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를 부인, 자녀들과 함께 나오고 있다. 캐머런은 이날 공식적으로 총리에서 물러났다. 런던/EPA 연합뉴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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