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등에 대한 집단학살이 벌어졌던 대표적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한겨레> 자료 사진
90살을 넘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가해자들의 빠른 처벌을 독일 사법부에 촉구하고 있다.
‘12·28 합의’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며 봉합한 한국과 일본 정부와는 달리, 독일 정부는 최근 나치 시절 집단수용소 가해자에 대한 처벌 대상을 주범에서 경비 업무 등을 했던 조력자나 부역자에게까지 확대하는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독일 법원의 재판 속도가 피해자들의 기대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 고령의 피해자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80명 중 1명인 로만 켄트(90) 국제아우슈비츠위원회(IAC) 회장은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은 (고령이기 때문에) 독일 사법 체계를 기다릴 만큼 많은 시간이 없다”며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7일 전했다.
독일 정부는 수십년 동안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혐의에 대해 범죄 관련 증거와 증인이 명확한 이들만 처벌 대상으로 삼아왔다. 경비병처럼 조력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처벌을 피해왔는데, 2011년 집단수용소 경비병 출신으로 당시 91살이던 존 뎀얀유크를 기소하면서 태도를 바꿨다. 덴얌유크는 뮌헨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이 진행되기 전인 2012년에 숨져 유죄가 확정되지는 않았다.
독일 뤼네부르크 법원은 지난해 7월 전 아우슈비츠 경비병이었던 95살의 오스카 그뢰닝을 학살에 조력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했으나, 전 경비병은 항소했다. 독일 최고법원까지 올라가 재판이 끝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고령의 피해자들이 재판이 마무리되는 것을 못 볼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에는 함부르크 인근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일했던 사람도 학살에 조력한 혐의로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마찬가지로 재판이 끝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크리스토프 휴브너 국제아우슈비츠위원회 부회장은 수용소 경비병들에 대한 잇따른 유죄 판결로 “독일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받았지만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원고들이 “다시 한번 몸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독일 당국은 지난주 폴란드 그단스크 인근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했던 남성 4명과 행정 업무를 했던 여성 4명을 기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