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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동생 품은 9살 소녀의 죽음…이탈리아 울렸다

등록 2016-08-28 14:30수정 2016-08-28 22:09

언니 밑에 있던 4살 동생 지진에도 목숨 구해
소방관은 언니에게 “못구해줘 미안” 편지
이탈리아 강진 발생 뒤 첫 장례식이 열린 27일 중부 마르케주 아스콜리피체노에서 9살 소녀 줄리아 리날도의 관을 사람들이 옮기고 있다. 줄리아는 24일 지진 발생 16시간 만에 페스카라델트론토 무너진 집에서 발견됐으며, 줄리아 몸 아래에 있었던 동생은 언니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아스콜리피체노/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강진 발생 뒤 첫 장례식이 열린 27일 중부 마르케주 아스콜리피체노에서 9살 소녀 줄리아 리날도의 관을 사람들이 옮기고 있다. 줄리아는 24일 지진 발생 16시간 만에 페스카라델트론토 무너진 집에서 발견됐으며, 줄리아 몸 아래에 있었던 동생은 언니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아스콜리피체노/EPA 연합뉴스
최소 29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 강진 때 숨진 희생자들의 첫 장례식이 27일 마르케주 아스콜리피체노에 있는 체육관에서 열렸다. 장례식장에 놓인 35명의 관 중에는 9살 소녀 줄리아 리날도의 흰색 관도 있었다. 줄리아는 지난 24일 새벽 이탈리아 중부를 강타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페스카라델트론토의 집 침대에서 동생인 4살 조르자와 함께 있었다. 지진 발생 16시간 만에 구조대는 자매를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꺼냈으나, 언니와 동생은 생사를 달리했다. 언니는 숨진 채 발견됐지만, 언니 밑에 있었던 동생은 언니가 만들어준 공간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언니인 줄리아(9)와 같이 있다가 구조된 소녀 조르자(4)의 구조 당시 모습.  <라 레푸블리카> 갈무리
언니인 줄리아(9)와 같이 있다가 구조된 소녀 조르자(4)의 구조 당시 모습. <라 레푸블리카> 갈무리
자매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소방관 마시모 카이코는 이탈리아 신문 <라 레푸블리카>에 언니인 줄리아가 만든 공간 때문에 동생이 숨을 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자매는 잠이 들었을 때, 또는 (지진 때문에) 두려움에 (깨서) 서로를 껴안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식 미사를 집전한 조반니 데르콜레 주교는 자매의 구조작업이 벌어질 때 구조 장소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며 “줄리아가 동생 위에 포개져 있었다. 서로 껴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목숨을 건졌지만 심한 부상을 입은 줄리아의 어머니는 들것에 실린 채 장례식장에 나타나, 줄리아의 사진을 향해 “안녕,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열린 날은 동생인 조르자의 생일이었다. 지진 때 받은 충격 때문인지 조르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신문들은 전했다. 조르자는 병원에서 울거나 잠을 자고만 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엄마와 인형을 찾는다고 한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병원으로 조르자를 찾아가 인형을 선물로 줬다.

소방관 안드레아가 24일 지진으로 숨진 9살 소녀 줄리아에게 쓴 편지.
소방관 안드레아가 24일 지진으로 숨진 9살 소녀 줄리아에게 쓴 편지.
언니인 줄리아가 의식적으로 동생을 구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매의 이야기는 이탈리아를 울렸다. 자매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소방관 안드레아는 줄리아의 관 위에 편지를 놓았다. 안드레아는 편지에서 “사랑스러운 작은 아이야.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해, 우리가 도착했을 때 너는 숨을 거뒀다. 용서해다오. 하지만 우리가 너를 꺼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내가 라퀼라에 있는 집에 도착하면, 나는 하늘에서 천사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너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안녕, 줄리아.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적었다.

이날 지진 희생자 첫 장례식에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렌치 총리 등 이탈리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우리는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르콜레 주교는 장례식에서 “울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진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4000명 이상의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를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26일 지진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 아쿠몰리에서 구조대가 생존자를 수색하기 위해 잔해를 헤치며 길을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에서는 24일 새벽 3시36분께 규모 6.2의 강진이 일어났으며, 24일 이후에는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쿠몰리/AP 연합뉴스
26일 지진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 아쿠몰리에서 구조대가 생존자를 수색하기 위해 잔해를 헤치며 길을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에서는 24일 새벽 3시36분께 규모 6.2의 강진이 일어났으며, 24일 이후에는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쿠몰리/AP 연합뉴스
이탈리아 검찰은 이번 지진이 건물 부실공사와 관련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탈리아 검사 주세페 사이에바는 지진으로 무너진 집들 중 상당수가 “시멘트보다 모래를 더 많이 써서 지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탈리아 지진 대비 법규는 서류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비용 문제와 부패, 관료주의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일부는 고대 건물보다 튼튼하지 않은 건물을 짓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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