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의 림니 해변가에서 한 여성이 비키니를 입었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과태료 티켓을 발부받고 있다.(왼쪽) 지난 23일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경찰들이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에게 부르키니를 강제로 벗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갈무리, <베스트이미지>
프랑스 법원 “부르키니 금지는 자유 침해” 결정
착용 금지한 지자체 30여곳, 결정에 불복 밝혀
세속주의가 종교 교리처럼 변했다는 비판 나와
착용 금지한 지자체 30여곳, 결정에 불복 밝혀
세속주의가 종교 교리처럼 변했다는 비판 나와
‘과거에는 몸을 노출하면 규제하고, 이제는 몸을 가리면 규제한다?’
무슬림 여성의 수영복인 부르키니 착용 논란이 확산되는 프랑스 파리의 한 화랑에서는 여성 수영복 비키니 70주년을 맞아 비키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을 열고 있다. 그 사진 중 하나는 1957년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의 림니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한 여성이 경찰관으로부터 과태료 티켓을 발부받는 장면이다. 당시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비키니를 입는 것은 불경하다며 단속의 대상이 됐다.
60여년이 흐른 지난 23일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는 온몸을 가린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이 경찰의 명령에 의해 부르키니를 벗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언론에 보도됐다.
<뉴욕 타임스>는 27일 이 두 장의 사진을 대조하며, 부르키니 논쟁이 기본적으로 여성의 몸을 규제하려는 권력의 문제이며, 이는 최근 세속주의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종교주의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비평했다. 신문은 “이탈리아 같은 강한 종교성을 가졌던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의 몸을 규제하는 것이 그 나라의 종교적 도덕성의 일환이었다”며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세속주의라는 민간 종교가 있다. 여성의 몸을 통제한다는 점에서는 정확히 같은 논리이고, 그 세속적 도덕성을 준수하는 여성들은 해변에서는 옷을 벗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했다.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니스의 부시장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시는 해변에서 부르키니나, 큰 티셔츠나, 바지, 히잡 등 여성의 몸을 가리는 것은 프랑스의 질서에 도전하는 ‘도발’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프랑스 최고법원이 26일 부르키니 착용 금지 조처를 불허하면서, 부르키니 논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의 최고행정법원인 국사원은 빌르루베 시의 부르키니 착용 금지 조처가 “기본적인 자유를 심각하고 명확하게 불법적으로 침해했다”며 중지 결정을 내렸다.
부르키니 착용 금지를 주장하는 쪽은 프랑스는 세속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적 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사원은 이에 대해 “국가는 ‘세속주의’지만, 국민들은 세속주의가 아니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종교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국사원은 또 부르키니를 금지하려면, 공공질서에 대한 검증된 위협이 있어야만 한다고도 지적했다.
부르키니 착용 금지를 내린 프랑스 지자체들은 이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나섰다. 리오넬 루카 빌르루베 시장은 “우리는 우리의 해변에서 미소지으며 친근한 척하는 샤리아(이슬람 법)를 적용하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프랑스공화국의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며 부르키니 논쟁을 세속주의와 종교주의 대결로 끌고 갈 것임을 명확히 했다. 니스 등 부르키니 착용 금지 조처를 취한 프랑스의 30여개 시당국들도 이 결정에 불복할 것임을 밝혔으나, 이번 소송을 이끈 인권동맹(LDH)의 파트리스 스피노시 변호사는 이 결정에 불복하는 모든 시 당국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논쟁을 부추키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보수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부르키니는 이슬람 급진주의를 돕는 도발”이라며 “프랑스를 프랑스답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마누엘 발스 총리도 페이스북에서 부르키니는 “공공장소에서 정치적 이슬람의 승인”이라고 말했다.
<르몽드>는 국사원의 결정을 “국법의 승리”라고 평했다. 보수지인 <르피가로>는 이 판결로 논쟁이 완화될 것 같지 않다며 프랑스 우익들은 이슬람 복장에 대한 금지 요구를 다시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도좌파인 <누벨 옵서바퇴르>도 “부르키니 논쟁은 끝나려면 멀었다”고 관측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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