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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2100년만에 델로스 섬에서 공연된 그리스 비극

등록 2016-09-06 15:26수정 2016-09-06 21:43

‘트로이 전쟁’ 비운의 왕비 헤카베의 삶 재연
“모든 것 잃고 에게해 건너는 난민 고통 조명”
그리스 델로스섬의 고대 극장 전경.   위키미디어
그리스 델로스섬의 고대 극장 전경. 위키미디어
“단 하루 만에 모든 걸 잃었구나! 부디 나의 명예를 존중해다오.”

트로이의 왕비가 두 팔을 벌려 울부짖으며 땅에 무릎을 꿇는다. 고대 그리스 작가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406년)의 비극 <헤카베>의 한 장면이다.

시리아의 세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밀려온 지 꼭 1년이 되던 지난 주말, 에게해 델로스 섬의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에서는 2100년만에 그리스 비극이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시리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전쟁과 박해를 피해 목숨을 걸고 에게해를 건너는 난민들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환기하려는 뜻에서 그리스 연극인들이 기획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6일 전했다. 공연작에 <헤카베, 한 난민>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다.

원작 <헤카베>는 전쟁으로 남편과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은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의 비극적 삶을 묘사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에게 목숨을 잃은 영웅 헥토르, 그리고 아폴론 신이 사랑했던 카산드라와 아가멤논의 제물이 된 폴릭세네가 헤카베의 아들과 딸들이다. 이후 헤카베는 전쟁의 끔찍한 고통을 폭로하는 반전의 상징 인물이 됐다.

이번 공연은 주연 여배우가 지난해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이 유엔에 쓴 절절한 편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여성은 편지에서 “만일 유럽 국가들이 진심으로 우리(시리아 난민)를 환영한다면, 왜 대사관 등 합법적 절차를 통해 받아들이지 않나요? 왜 세계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눈을 가리고 외면하나요?”라며 세계인의 도움을 호소했다. 주연 여배우는 “감정이 북받쳤다. 관객과 남녀 배우 모두가 연극이 시작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울었다”고 말했다.

델로스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그리스 문화·역사의 보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쌍둥이 남매인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론과 달과 활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게해 키클라데스 군도 유적청의 디미트리스 아타나술리스 청장은 “2천년 동안 연극 발성이 들리지 않고 잊혀졌던 유적지 극장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공연을 했다”며 “전쟁과 난민의 비참함이라는 엄중한 문제를 집중조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니코스 카라요르고스는 “헤카베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은 여성, 인간의 상징이며, 바로 지금 시리아 난민이 그런 상실을 겪고 있다”며 “에게해에서 자녀와 혈육, 집과 나라까지 모든 것을 잃은 난민들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델로스 섬은 기원전 3000년전께 사람이 정착한 이래 기원전 3세기까지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나, 기원전 1세기 무렵 이웃 왕국과 해적들의 약탈로 급속히 쇠락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됐다. 그러나 신전과 극장 등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 풍부해, 지금도 매년 1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2100년만에 그리스 비극이 재연된 델로스 극장은 애초 6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축조됐으나, 이번 공연에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관객이 하루 300여명 정도로 제한됐다. 공연도 현대식 음향·조명 시설이 없이 전통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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