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에 80여만명 독립 요구
300여년 전 점령한 스페인
“독립 안돼” 자치·고유어만 허용
300여년 전 점령한 스페인
“독립 안돼” 자치·고유어만 허용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인 1714년 9월11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의 군대가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 핵심 도시인 바르셀로나를 점령했다. 부르봉 왕가의 후손인 펠리페 5세는 카탈루냐가 왕위 계승 전쟁에서 합스부르크가의 편을 든 데 분노해 카탈루냐의 독립적 지위를 박탈했다. 독자적 법률은 폐지됐고 의회는 해산됐다. 9월11일은 이후 카탈루냐 국경일이 됐고, 독립 요구 시위가 벌어지는 날이 되기도 했다.
올해 9월11일에도 카탈루냐에선 독립 요구 시위대 87만5000여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고 스페인 신문 <엘파이스>가 전했다. 카탈루냐 전체 인구가 750만명이어서, 카탈루냐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시위에 나선 셈이다. 바르셀로나에서만 54만명이 참가했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주지사는 “카탈루냐를 독립국가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탈루냐 독립파들은 내년 중반까지 카탈루냐 독립을 관철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시위 규모는 바르셀로나에서만 140만명 이상이 참가한 지난해보다는 크게 줄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독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2014년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 지방정부가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하자, 헌법재판소에 카탈루냐 지방정부를 제소했다. 헌법재판소는 독립 주민투표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고,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비공식 주민투표로 만족해야 했다. 당시 주민투표에서 독립 찬성표가 80%를 넘었지만, 효력이 없는 비공식 투표였기 때문인지 투표율은 50%에 못 미쳤다.
카탈루냐는 20세기 초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프랑코 독재 기간을 제외하고는 광범위한 자치를 누려왔다. 카탈루냐에서는 카탈루냐어가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인다. 최근 들어 카탈루냐의 독립 주장이 강해진 것은 남유럽을 강타한 재정위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재정위기 때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지난 7월 기준 실업률이 20%에 이른다. 카탈루냐는 전통적으로 스페인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이다. 중앙정부가 자신들에게 거둔 세금을 가난한 남부 지방에 쓴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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