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두(왼쪽) 안무가가 지난 10월29일부터 영국 런던 주영 한국문화원 앞에서 용호성 문화원장이 지난해 국립국악원 예술 검열 사태의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일본 릿쿄대 준교수(부교수)인 안무가 정영두(42)씨는 지난달 28일 영국으로 건너와 11월6일까지 주영한국문화원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일본에 있는 정씨가 영국까지 찾아와 1인 시위를 벌인 이유는 지난해 국립국악원에서 벌어진 ‘검열’ 의혹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와 국악 연주단체인 앙상블시나위가 기획한 공연 <소월산천>은 국립국악원 공연을 불과 2주 앞두고 취소돼 논란에 휩싸였다. ‘소월산천’을 기획했던 연출가 박씨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다. 국악원은 해당 공연의 리허설도 보지 않고 공연을 돌연 취소했다.
런던에서 만난 정씨는 “예술인으로서 ‘블랙리스트’, ‘예술 검열’ 의혹이 일고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올릴 수 없다”며 국악원 무대에 올리기로 한 자신의 공연을 취소하고 예술 검열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가 서울이 아닌 런던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용호성 주영 한국문화원 원장이 지난해 국악원에서 벌어진 ‘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용 원장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악원 기획운영단장으로 파견된 고위공직자였다. 정씨가 내건 입간판에는 “용호성 원장은 국악원 예술 검열 사태의 진실을 밝혀라”, “박근혜 정부는 예술 검열을 중단하고 예술가들에게 사과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 용 원장은 21일 “앙상블시나위 공연이 다른 공연으로 대체된 것은, 국악기 연주에 특화된 음향과 조명 등 공연장 특성을 고려해 프로그램 제작·협의 과정에서 일어난 사안”이라며 “박근형이라는 특정연출가로 인한 정치적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용 원장은 그러면서 “(앙상블시나위 공연 논란) 불과 6개월 전에 박근형 연출 작품인 ‘소리달 완창 프로젝트’를 공연한 바 있다. 만약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면 이때에도 박근형 연출의 작품을 공연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최근 ‘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폭로되면서 특정 예술가에 대한 의도적 공연 방해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 박근형 연출가의 기획공연이 취소된 이유에 대해 당시 국악원 공연을 담당했던 연구관과 공동공연 기획자였던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가 통화한 녹취 내용을 보면,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이 포함됐기 때문에 국악원에서의 공연이 곤란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정씨는 “지난해 국악원 ‘소월산천’ 검열 문제 발생 1년이 지났지만, 납득할만한 어떤 해명도 듣지 못했다. 예술가들은 무대를 빼앗겼는데, 빼앗은 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바꿔가며 일하고 있다. 검열 문제는 1년 동안 수그러들긴 커녕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고 말했다.
런던/최상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