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프랑스 중도우파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선거 운동 기간이던 지난 25일 파리에서 엄지를 들어올리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내년 5월 프랑스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중도 우파 공화당의 대선 후보에 프랑수아 피용(62) 전 총리가 뽑혔다. ‘프랑스판 대처주의자’로 평가되는 피용은 ‘프랑스의 위대함’ 복원을 내걸고, 그동안 침묵하던 지방의 부유층과 노년층들의 표심을 잡았다.
27일 열린 프랑스 공화당 대선 경선 결선투표에서 피용은 67%를 득표해 33% 득표에 그친 알랭 쥐페 보르도 시장을 손쉽게 꺾었다. 지난 20일 1차 투표에서 피용은 1위, 쥐페는 2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3위였다. 경선 전에는 셋 중 가장 중도적 성향이며 자크 시라크 정부 때 총리를 지낸 쥐페가 1위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뚜껑을 여니 피용이 가장 앞섰다. 그리고 결선투표에서도 이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피용은 내년 5월 열릴 예정인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와 맞붙을 확률이 높다.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아직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나, 지지율이 4%까지 추락했을 만큼 인기가 없다. 다른 사회당 대선 후보들도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할 확률이 높다고 프랑스 언론들은 전했다. 지난 5월 여론조사에서 피용은 르펜과 맞붙을 경우 65% 대 35%로 승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용은 경선 뒤 “좌파는 우리를 실패로 이끌었고, 극우파는 우리를 파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애초 ‘제3의 후보’로 출발했으나,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를 내세워 중도 성향의 쥐페를 꺾었다. 여론조사업체 엘라브에 따르면, 피용을 지지한 사람들의 절반은 은퇴자이고, 3분의 1은 고소득 기업간부이다. 16%만이 18~34살이다. 지지자의 60%가 지방 주민이며, 20%가 파리 시민이고, 19%가 농촌 지역 출신이다. 지지자의 60%는 남성이다.
이번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은 누구든지 2유로(약 2500원)를 내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투표제로 실시돼, 모두 200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방에서 대거 참여한 중산층 유권자들의 표심이 피용을 당선시켰다.
피용은 사르코지 정부 시절 총리를 했으며 시장주의적 경제 변화를 주장하는 인물이다. 주 35시간 노동제 같은 프랑스 사회경제 모델에 대해 “모든 곳에 물을 흩뿌리는 격”이라며 폐지를 주장한다. 연금 수령 연령도 더 늦추자고 주장한다. 다만, 영국 <가디언>은 피용이 프랑스적 기준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우파적 성향이 강하지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줄 정도까지 우파적이진 않다고 전했다. 대처 전 총리가 공공부문 민영화를 급격하게 추진했지만, 피용이 국영기업 민영화까지 추진할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피용은 경선 과정에서 국영기업 인력 축소, 복지 혜택 감소 등을 주장했다. 경선 승리 뒤에는 “기업가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고까지 말했다.
이번 공화당 경선에서는 ‘프랑스적 가치’가 무엇이냐가 큰 쟁점 중 하나였으며, 피용은 “프랑스가 다문화 사회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쥐페 시장이 프랑스 내 여러 인종과 단체가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정체성’을 주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피용은 “누군가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집을 차지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로 이민자들은 사실상 ‘외부인’이라는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피용은 무슬림 여성들이 입는 수영복인 ‘부르키니’ 착용 금지 조처에도 찬성한다.
피용은 사회적으로는 보수 가톨릭에 가깝다. 동성 결혼 허용 법안에 반대해왔으며, “낙태는 권리가 아니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현행 낙태 관련 법을 바꿀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피용의 대선 후보 당선은 프랑스에서 가장 침묵하고 잊혀졌던 정치세력, 즉 부유한 지방의 조용한 부르주아지들의 표와 지지에 힘입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르사이유대학의 로랑 부베 교수는 “지방의 부르주아지가 자신들과 닮은 후보를 선택했다”며 “그들은 샤를 드골의 위대함에 향수를 가졌고 너무 많은 비용을 쓰는 국가에 실망했다. 프랑스의 이미지를 훼손한 사르코지와 올랑드로부터 책장을 넘기려는 지방의 중산층들이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들 유권자들은 피용이 자신의 경제정책 정강에 영향을 준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자유시장 정책에 특별히 끌리지는 않으나, 프랑스의 쇠락과 실업을 막을 다른 것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중도 좌파’ 사회당과 ‘중도 우파’ 공화당이 각축하던 프랑스의 정치지형은 내년 대선에서는 오른쪽으로 훨씬 치우쳐 프랑스 가치를 내세우는 ‘전통 우파’ 피용과 ‘극우 포퓰리리스트’ 르펜의 대결로 바뀌게 됐다.
정의길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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