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1시께 베를린 동물원역 앞. 통제 울타리 바깥에 세계 각국의 방송 차량 카메라 마이크가 진을 치고 있다. 거기서 100여m 전방에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가 우뚝 서 있다. 2차 대전때 폭격으로 외부가 손상된 채로 보존되어 평화의 상징이 된 장소다. 그래서 충격은 더하다.
전날 저녁, 그 교회 앞에 있는 브라이트샤이트 광장으로 40t짜리 대형 트럭이 돌진해, 사망자 12명 부상자 48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독일연방검찰은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추정했고, 이슬람국가도 ‘아마크’ 통신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사건 현장은 경찰이 둘러싸고 통행을 막았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현장을 바라보던 토니 슈미트(22)는 “쇼핑하러 이 근처에 왔다가 들렀다. 어젯밤 테러소식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베를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 나한테 일어난 일 같다. 파리와 니스 테러 때도 충격 받았지만 1000㎞ 떨어진 곳과 30㎞ 떨어진 곳의 느낌 차이는 크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둘러싼 곳곳에 손에 꽃과 초를 든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빛은 어둠보다 강하다”, “당신들은 우리 안에서 살아갈 겁니다. 베를린 시민.”, “왜?”라는 푯말들이 통행금지로 막아 놓은 벽에 붙어있다. 그 아래로 꽃다발과 촛불을 놓는 손길이 이어졌다. 꽃다발을 놓은 라이너 괴체(47)는 “이 근처에 산다. 이 범죄가 끔찍하고 비열하다고 생각해서 나왔다. 우리가 아무 말 안하고 이런 폭력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 개인에 대한, 그리고 자유세계에 대한 공격이다. 이번에도 이슬람 테러다. 이슬람이 도를 넘어섰다”고 했다.
흰 장미를 한 송이씩 놓으며 기도하던 10대 소녀들도 있었다. 샨탈 카엘(15)은 “사망자들을 위해 추모하려고 나왔다. 이런 일이 정말 슬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샤이엔 부르흐발스키(15)는 “어젯밤 이 소식을 듣고 내내 울었다. 부상자들이 고비를 잘 넘기고, 피해자 가족들이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토마스 클레어(44)는 “이번 일로 무슬림들이 모두 테러리스트로 오해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사고 현장 근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에서 희생자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또 이날 하루 베를린에 있는 60여개의 크리스마스시장이 문을 닫았다. 애초 수사당국이 용의자로 의심했던 인물은 범죄 혐의가 뚜렷하지 않아 풀려났다. 경찰은 현재 테러범의 행적을 쫓고 있으며, 베를린은 최고 비상사태다. 일간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은 “베를린은 공포, 슬픔, 그리고 불안에 휩싸여있다”고 썼지만, 주간 <슈피겔> 온라인은 “베를린 시민들은 테러에 굴하지 않는,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최근 프라이부르크에서 17살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 19살 독일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더욱이 피해 여대생은 난민을 돕는 자원봉사자였다. 범인이 잡힌 지난 12월 초부터 독일에 난민에 대한 논쟁에 불붙기 시작한 터라 이번 트럭 테러는 이 논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부대변인 알렉산더 가우란트(75)는 트위터에 “정부의 난민정책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비난했고, 집권여당 기민련의 자매당인 기사련 당수 호르스트 제호퍼(67)는 “난민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재정비해야한다”고 밝혔다.
내년 독일 총선 총리후보로 4선에 도전하는 앙겔라 메르켈의 행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베를린/글·사진 한주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