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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크리스마스 시장 시민들 “테러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등록 2016-12-21 16:50수정 2016-12-21 22:02

베를린 트럭테러 현장 르포
시민들 꽃·촛불 들고 희생자 추모 행렬
“베를린 심장이 가격당했다” “왜?” 팻말도
반감 우려한 무슬림들 ‘반테러 집회’ 열어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촛불을 켜고 있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촛불을 켜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장의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곳을 채웠던 따뜻한 적포도주의 향기도 사라졌다.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던 놀이기구의 불빛도 꺼졌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가 번쩍이던 자리에는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켠 촛불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한 남성이 “‘베를린의 심장’이 가격당했다”는 푯말을 들고 있었다. 이 광장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훼손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쟁의 위험성을 세계인에게 전시한 공간이다. 그 옆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시장은 반평화의 상처를 통과한 현대 독일인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19일 최소 12명이 희생된 ‘트럭 테러’는 평화를 기원하는 베를린의 이 상징적 공간을 덮친 사건이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서 한 남성이 “‘베를린의 심장’이 가격당했다”는 푯말을 들고 서있다. 밑에 놓인 푯말에는 “왜?”라고 쓰여있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서 한 남성이 “‘베를린의 심장’이 가격당했다”는 푯말을 들고 서있다. 밑에 놓인 푯말에는 “왜?”라고 쓰여있다.
다음날인 20일, 사건 현장인 브라이트샤이트 광장에 걸린 시민들의 추모 글귀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건 “왜?”(Warum)라고 묻는 단어였다. 희생자를 추모하려고 꽃을 들고 온 20대 여성 헬가는 “슬프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어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친구랑 이곳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만났다. 테러가 일어난 시각에 있었다면 나도 희생자가 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 놓인 꽃 사이에 “우리가 더 강하다”고 쓴 쪽지가 보인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 놓인 꽃 사이에 “우리가 더 강하다”고 쓴 쪽지가 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한 경찰은 “베를린도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시민들이 불안감을 갖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추모객들 중에는 경찰 통제선 너머의 사건 현장을 보며 눈물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온라인판 기사에서 “베를린 시민들이 사건 당일 충격에 휩싸였지만 이제 테러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침착해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 현장에선 테러 세력을 향해 “당신은 이긴 것이 아니다”, “테러가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적은 글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더 강하다”, “빛은 어둠보다 강하다”, “사랑과 평화를 위해”라고 적힌 글귀 주변에도 시민들이 가져온 촛불이 모이고 있었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서 독일 경찰차가 서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을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다.
트럭 테러 발생 하루 뒤인 20일 독일 베를린 브라이샤이트 광장에서 독일 경찰차가 서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을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다.

일흔이 넘었다는 베를린 시민 게르데스는 “두려워만 할 수 없다. 여기에서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연대하고 결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내무부장관, 베를린 시장 등 정치권 인사들도 20일 오후 사건 현장을 찾아 추모하고, 카이저 빌헬름 교회에서 진행된 추모 예배에 참석했다.

사건 현장에선 베를린 거주 무슬림들의 반테러 집회도 열렸다. 독일 검찰이 난민 출신을 용의자로 추정하는 등 이번 테러 이후 난민과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거주 무슬림들은 “나는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현재 독일에선 이번 사건의 진범이 잡히지 않아 메르켈 총리가 추진해온 난민 개방·보호 정책에 대한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논쟁이 아직 불거지고 있지는 않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테러 배후를 자처했지만, 독일 검찰이 붙잡았던 파키스탄 출신 난민 남성이 증거 부족으로 다시 풀려났기 때문이다. 독일 언론들은 “베를린의 옛 템펠호프 공항에 있는 난민 최대 보호소가 평소처럼 고요하고 조용했다”고 전했다. 난민 반대 세력들이 아직 공개적인 실력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사건 현장에선 난민을 향한 목소리가 혼재했다. 한 시민은 “극단주의적 이슬람 세력들의 평화를 향한 공격”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다른 베를린 시민 헤르만은 “테러가 아니라 자유와 삶을 위해 찾은 난민들이 이번 일로 정치적으로 악용될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베를린 시는 사건 직후인 20일 시내에 있는 크리스마스 시장 60곳의 불을 모두 끄고 출입을 막았다. 심야엔 브란덴부르크 문에 독일 국기 조명을 비춰 희생자를 추모했다. 드레스덴 등 독일 다른 지역에선 콘트리트 방어벽을 크리스마스 시장에 설치하고 경찰 병력 배치를 늘렸다.

베를린/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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