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현대 유럽의 정체성과 대서양 양안 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말을 쏟아내자 유럽 주요국에서 거센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기자들과 만나 “유럽의 운명은 우리 유럽인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트럼프)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나의 입장도 이미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고 독일 <데페아>(dpa) 통신이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은 서로 굳건히 서있다”며 “유럽의 강한 경제력과 제도는 테러리즘과 같은 험한 과제들에 대응하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유럽 뒤흔들기 행보에 휘말리지 않고 제 갈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유럽연합은 내부 사안들에 대해 외부의 충고는 필요 없다”며 트럼프의 존재감을 무시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을 불과 닷새 앞두고 한 인터뷰 발언은 유럽연합에서 충격과 격앙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자가 15일치 영국 <타임스> 및 독일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난 건 현명한 선택”이라며 브렉시트를 지지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시대에 뒤쳐진 기구이며 회원국들이 제몫을 부담하지도 않는다”며 나토 무용론을 주장한 데 대한 경계심과 반발이다. 트럼프는 특히 “유럽연합은 독일의 도구일 뿐”이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난민수용 정책은 재앙적 실수”라며 독일에 집중 비난을 퍼부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독일, 나토, 유럽연합에 불신과 분노를 드러낸 트럼프의 발언들은 전후 질서의 기둥을 흔드는 근육 자랑”이라고 꼬집었다. 신문은 이어 “트럼프의 공격적 발언들은 유럽 외교관들이 결코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초로 유럽 분열을 부추기는 미국 대통령에 대처하는 도전을 강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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