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를 앞두고, 급진 좌파인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16일 툴루즈의 한 공원에서 유권자들에게 유세를 벌이고 있다. 툴루즈/AFP 연합뉴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각축전이었던 프랑스 대선이 다크호스의 막판 상승세로 ‘4파전’으로 돌변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를 존경하고, 부자한테 무거운 세금을 매길 것이며, “시민 혁명”을 이루겠다고 선언한다.
‘급진 좌파’ 후보 장뤼크 멜랑숑(65)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막판 선전하면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1차 투표(4월23일)의 구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두 차례 텔레비전 토론회를 계기로 멜랑숑의 지지율은 20% 안팎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25~34살 유권자층에선 지지율이 두배로 뛰었다. 그동안 그를 무시했던 언론도 앞다퉈 그를 조명하고 나섰다. “부르주아들이 떨고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16일 프랑스 제4의 도시 툴루즈에선 수만명이 그를 보기 위해 운집했다. 그는 “일요일에 일하지 않는다고 해고당하는 노동자에게 자유란 대체 무엇인가?”라면서 자본주의를 정면 비판했다. 화학공장에서 일하다 건강을 해쳐 은퇴한 한 남성(60)은 “금융권의 엄청난 부자와 갈수록 가난해지는 보통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멜랑숑은 우리에게 좀더 평등한 인간적인 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줬다”고 <뉴욕 타임스> 기자한테 말했다.
한두 달 전만 해도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48)이 5월7일 실시되는 결선투표에 진출하고, 극우정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프랑스의 ‘공화주의 전통’에 힘입어 결국 마크롱이 이길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멜랑숑은 평균 23~24% 지지율의 두 선두주자를 대략 5~6%포인트 격차로 추격하면서, 기존 3위 후보였던 제1야당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63)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선두와 격차가 3%포인트 수준인 조사 결과도 있다. 또 4700만명 유권자 가운데 부동층이 많게는 3분의 1 정도 되는 상황이다. <르몽드>는 “네명 가운데 누구든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는 특이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깊어지는 양극화와 높은 실업률 등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각에선 극우 르펜과 강성 좌파 멜랑숑이 결선투표에서 맞붙는 상황을 예상하기도 한다. 르펜은 프랑스인이 아닌 노동자를 고용하면 10%의 세금을 추가로 매기겠다고 할 만큼 외국인에 적대적이며, 공공지출 축소를 내걸고 있다. 멜랑숑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이고, 40만유로(약 4억8천만원) 이상의 소득구간에 대해선 90%의 세금을 매기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프랑스 대선 결과에 따라 유럽연합(EU)이 침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르펜은 유럽연합 탈퇴를 위해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으며, 멜랑숑은 유럽연합 조약에 대한 재협상을 벌여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브렉시트에 이어 프렉시트(Frexit)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 프랑스산업연맹의 피에르 가타즈 회장은 현지 언론에 “멜랑숑과 르펜이 결선투표에서 맞붙는다면 프랑스에 대재앙이 될 것이다. 유권자들은 ‘경제적 재앙과 경제적 혼돈’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멜랑숑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70년대에 프랑스 사회당에 입당해 86년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다. 2008년 사회당을 탈당해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이끌면서 이번에 두번째로 대선에 출마했다. 이번 대선에는 집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49)도 뛰고 있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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