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출처: <인디펜던트>
#“나의 매기(Maggie·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애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테리사 메이(61) 영국 총리를 손님으로 맞기 전 그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1980년대에 밀월 관계를 과시한 대처 전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테리사는 지독히 까다로운 사람이야. 하지만 우리는 대처하고도 일해봤잖아.” 영국 보수당 중진 켄 클라크는 지난해 7월 의사당 스튜디오에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녹화가 안 되는 줄 알고 한 말은 <스카이뉴스> 방송을 탔다.
지난해 7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에 따라 사퇴한 자리를 메운 메이 총리는 당시 대처와 비유되곤 했다. 그가 두 번째 여성 총리인 데다, 대처와 같은 보수당 소속에 옥스퍼드대 동문이라는 점 때문이다. 반면 성격이나 정치 스타일은 별 유사점이 없다는 반론도 나오면서 ‘대처의 후계자’라는 말은 자취를 감췄다. 대처보다 위험 회피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그러나 18일 메이 총리가 종전 입장을 번복해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또다른 ‘철의 여인’ 탄생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취임 전에는 브렉시트에 부정적이던 메이 총리는 이제 유럽연합(EU)과의 급격한 단절을 뜻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밀어붙이려 한다. 유럽 통합의 핵심 중 하나인 ‘이동의 자유’를 철폐하고, 유럽 단일시장에서는 탈퇴하되 자유무역협정으로 접근권을 얻는다는 구상이다. 반면 노동당은 이동의 자유 제한은 시대에 역행한다며 반대하고, 자유민주당은 브렉시트 자체를 취소하고 싶어 한다.
반대자들에 대한 태도도 강경했다. 총리 관저 앞에서 조기 총선 방침을 발표하면서 야당들을 싸잡아 비판한 뒤 “선거로 뽑히지 않은 상원의원들도 (브렉시트의) 모든 과정에서 우리와 싸우겠다고 한다”고 비난했다. “영국은 단결하고 있지만 웨스트민스터(의사당)는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국민 내지 여론에 반하는 집단으로 간주해 배척하는 프레임이다.
이런 태도는 대처의 이미지를 점점 떠올리게 하고 있다. 1979~90년에 총리를 한 대처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결과 진압의 정치를 했다. “미친 좌파”와 싸우는 게 사명이라면서 노조를 괴멸시키고 노동당을 폐기 직전까지 몰고갔다. 유럽 통합에도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하원 650석 중 330석만 확보한 지금의 보수당과 메이 총리로서는 브렉시트 문제 등을 헤쳐나가려면 압도적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는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이 382석을 얻을 수 있고, 노동당은 179석(현재 229석)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압도적 승리를 못 하면 역풍이 불가피하다. 진보지 <가디언>의 칼럼은 조기 총선 결정을 “쿠데타”라고 까지 표현했다.
메이 총리는 지난 1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대처를 떠올리는 것은 “게으른” 비유라면서 “난 과거의 어떤 사람을 모방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선거 이후 상황은 그 말이 얼마나 맞는지도 보여줄 수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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