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2위를 차지해 5월7일로 예정된 결선투표에 진출한 극우정당 국민전선(FN) 대표 마린 르펜이 프랑스 북부 에냉보몽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에냉보몽/EPA 연합뉴스
마린 르펜(48) 국민전선(FN) 대표가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 오른 것은 정치적인 ‘부친 살해’의 결과다.
그는 아버지 장마리 르펜(89)에 이어 극우정당 후보로는 15년 만에 두번째로 올해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국민전선 설립자인 장마리는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6.86%를 얻어, 자크 시라크 후보(19.88%)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선투표에서 겨우 17.79%를 얻어 시라크 후보(82.21%)한테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변호사 출신의 셋째 딸 마린은 ‘아버지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어쩌면 아버지는 권력을 쥐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11년 국민전선 대표가 된 마린은 대중의 지지를 넓혀 정권을 잡으려면 당의 이미지를 ‘세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을 장악한 그는 아버지를 당에서 쫓아냈다. 셋째 딸을 “가슴을 가진 나”라고 부르며 총애했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2015년 아버지가 “(유대인 학살용) 가스실은 2차 세계대전 역사의 소소한 사건일 뿐”이라는 발언으로 거센 비난을 받자, 마린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아버지를 당에서 쫓아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아버지가 당의 변신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르펜 가족에 관한 책을 쓴 프랑스 언론인은 “이 가족한테 정치는 피보다 진하다”고 했다. 마린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삼가고 경제난을 겪고 있는 젊은층에 다가가며 지지를 넓혀갔다.
마린은 결선투표 진출이 확정된 뒤 “거만한 엘리트들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킬 때가 왔다”며 “야만적인 세계화가 우리 문명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국민전선은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프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며, 합법 이민자를 연 1만명으로 제한하고, 불법 체류자는 모두 추방하는 것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마린은 결선 진출 축하 연설을 프랑스 북부의 쇠락한 산업도시인 에냉보몽에서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중부의 쇠락한 공업지역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듯, 마린도 쇠락한 산업지대의 노동자들을 파고들고 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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