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앞줄 왼쪽 셋째) 프랑스 대통령이 29일 베르사유궁의 별궁인 그랑트리아농궁에서 ‘표트르 대제, 프랑스에 온 차르: 1717’이라는 그림을 관람하고 있다. 러시아의 근대화를 주도한 표트르 대제는 300년 전 베르사유궁을 방문했다. 베르사유/타스 연합뉴스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은 ‘차르’ 앞에서 300년 전의 어린 왕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39) 프랑스 대통령은 29일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64) 러시아 대통령의 면전에서 러시아 국영언론이 지난 프랑스 대선 때 자신을 반대하는 선전기관처럼 굴었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억센 악수에 이어 ‘강자에게 강한’ 마크롱 스타일의 외교가 눈길을 끌고 있다.
마크롱과 푸틴은 29일 파리 외곽의 베르사유궁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마크롱은 푸틴을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이 아닌 베르사유궁으로 초대했다. 푸틴은 러시아의 계몽 군주 표트르 대제의 방문 300돌을 기념해 프랑스를 방문했는데, 베르사유궁 입구에서는 그때처럼 성대한 기마 의장대 행렬이 푸틴을 맞았다. 표트르 대제가 1717년 4~6월 두 달간 프랑스에 머물며 두 차례 방문한 베르사유궁에서는 그의 방문 기념 전시회가 30일 개막했다.
표트르 대제는 방문 당시 7살 어린아이였던 프랑스 왕 루이 15세를 자기가 아버지라도 되는 양 양팔로 들어올리는 외교적 무례를 아무렇지 않게 범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이번 회담에서 껄끄러운 주제들을 직설적으로 언급하며 푸틴을 압박했다.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마크롱은 러시아가 지원하는 바샤르 아사드 정부를 비판하며 시리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화학무기 사용 땐 즉각 대응할 것”이라며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공습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달 반군 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비난을 샀다. 그러나 푸틴은 기존 정부를 무너뜨리면 테러리즘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마크롱과 견해를 달리했다.
마크롱은 또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러시아 국영언론 <러시아투데이>와 <스푸트니크>가 가짜 뉴스를 전파해 캠프 출입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이다. 반면 푸틴은 개입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대선 기간 중 극우 마린 르펜 후보를 만난 것은 단지 르펜의 요청에 응한 것뿐이고, 러시아의 마크롱 캠프 해킹 의혹에 대해서도 “추측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크롱은 최근 남성 동성애자에게 고문을 자행한 러시아 체첸 자치공화국의 이른바 ‘게이 수용소’ 등 인권 문제를 “계속 주시하겠다”며 푸틴을 견제하기도 했다.
푸틴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뒤 가해진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문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제재는 지속될 것”이라고 답했다.
많은 주제에서 이견을 보였지만 두 정상은 이슬람국가(IS) 등 테러 세력 문제에서는 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서도 공동의 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
마크롱이 지난 25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손을 억세게 오래도록 쥔 것 때문에 푸틴과 마크롱의 ‘악수’도 주목받았다. <가디언>은 “악수는 정중하고 신속했다. 마크롱이 푸틴의 어깨를 쓰다듬기도 했다”면서도 “화기애애해 보였지만 냉담했다”고 평가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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