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에서 176년 이어진 보수당 의석을 빼앗은 로지 더필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조기 총선 승부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브렉시트 과정에서의 협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건 이번 선거는 그 자신한테도 영국인들한테도 쓸모없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성과’도 있다. 최초로 여성 당선자 수 200명과 비중 30%라는 선을 넘은 것이다.
8일 총선 결과, 하원의원 당선자 650명 중 여성은 208명(32%)으로 처음으로 30%대에 이르렀다. 그 비율이 29.4%(191명)였던 2015년 총선보다 17명 증가했다. 마거릿 대처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총리인 메이는 보수당의 과반 확보 실패로 본전도 못 건졌지만 ‘여성 정치’ 확대라는 뜻밖의 부산물을 챙긴 셈이다. 보수당은 317명 중 67명(21.1%), 노동당은 262명 중 119명(45.4%)이 여성 당선자다. 스코틀랜드국민당(12명)과 자유민주당(4명)도 여성 비중이 30%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캔터베리 선거구를 30년간 지배한 보수당 거물 줄리언 브레이저를 187표 차이로 꺾은 로지 더필드(46)다. 그는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약화시키려는 보수당의 문제를 파고들어 2년 전보다 노동당 득표수를 배로 늘리며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캔터베리는 보수당이 지난 176년간 의석을 놓치지 않은 선거구다. 역시 노동당 후보인 프리트 길(44)은 버밍엄의 에지배스턴에서 최초의 시크교도 출신 여성 의원이 됐다.
여성들의 약진은 내년이 의회 선거 참정권을 쟁취하고 여성 하원의원이 탄생한 지 100돌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더 뜻깊다. 1918년 영국 지배하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콘스턴스 마키에비치가 최초의 여성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소속 정당인 신페인당이 의회 참여를 거부해 실제 취임하지는 못했다. 조기 총선일인 6월8일은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 참정권 쟁취를 외치며 경마대회에 참가한 왕 조지 5세의 말에 치여 사망한 지 104돌 되는 날이기도 하다. 1918년 당시에는 일정한 재산을 보유한 30살 이상 여성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다. 남성과 같은 수준의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10년이 지나서였다.
하원의 여성 비중은 1980년대만 해도 5% 아래였다. 1997년 처음 10% 벽을 깼다. 복수의 여성이 내각에 들어간 것도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때 한꺼번에 5명을 임명했을 때가 처음이다.
한편 전보다 13석이 줄어 과반에 8석이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든 메이 총리는 민주연합당과의 정부 구성 협상에 매달리지만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비시>(BBC)가 11일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총리를 축출하려 한다고 보도했으나 존슨 장관은 “난 메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메이의 공동 비서실장인 닉 티머시와 피오나 힐이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사임 압력은 줄지 않고 있다.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은 지난해 자신을 해임한 메이 총리를 가리켜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여자”라고 조롱했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총리가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가려 한다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선거를 또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기세를 올렸다.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들 중 48%가 메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38%였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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