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을 ‘마뉘피테르’로 묘사한 프랑스 언론 <리베라시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베르사유궁에 상·하원 의원들을 모두 불러 첫 국정연설을 했다. 상징적 장소를 이용해 ‘위엄 있는 대통령상’을 만들려 했다는 평가 속에 이를 비꼰 ‘마뉘피테르’(마크롱과 쥐피테르의 합성)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마크롱은 3일 파리 외곽 베르사유궁에서 상·하원 의원 925명을 대상으로 한 합동연설에서 의원들에게 정치 개혁 동참을 호소했다. 우선 대선 공약인 의회 정원 감축을 시행할 의지를 밝혔다. 마크롱이 제시한 안은 정원의 3분의 1을 줄이는 것으로, 577명인 하원은 385명, 348명인 상원은 232명으로 줄게 된다. 그는 연설에서 의회의 동의를 호소하면서도 “필요할 경우 국민투표를 하겠다”며 의원들을 압박했다.
마크롱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현재 프랑스는 비례대표 없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소수정당이 의석을 얻기가 보다 쉬워진다. 다만 대표 마린 르펜이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할 정도로 상당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지만 의석 수는 미미한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다. 마크롱은 이밖에 대테러법을 개정하고 2015년 파리 테러 때부터 유지돼온 국가비상사태를 올 가을 해제할 뜻도 밝혔다.
이날 연설은 형식부터 주목받았다. 과거 대통령 상·하원 합동연설은 특별한 경우에 단 두 번 진행됐을 뿐이다.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금융위기 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2015년 파리 테러 뒤 한 게 전부다.
마크롱은 당선 연설을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르사유궁에서 만났다. 이번에도 베르사유궁에서 합동연설을 한 것을 보면, 역사적 상징을 활용해 힘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마크롱은 너무 활동적이었던 사르코지, 너무 평범했던 올랑드 등 전임자들이 대통령상을 훼손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위엄있는 대통령’ 이미지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 파리 외곽 베르사유궁에서 상·하원 합동 특별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복도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베르사유/AFP 연합뉴스
하지만 마크롱이 군주 흉내를 낸다는 비난도 나왔다. 급진 좌파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뤼크 멜랑숑은 마크롱을 “파라오”로 칭하면서 “대통령직에 군주제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멜랑숑을 포함해 프랑스 앵수미즈 소속 의원 17명은 연설 참석을 거부했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은 마크롱을 로마신화의 주신 쥐피테르(영어명 주피터)의 이미지와 합성해 ‘마뉴피테르’로 부르며 비꼬는 삽화를 실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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