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독일 함부르크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현장에서 바리케이드가 불타고 있다. 함부르크/AP 연합뉴스
7~8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뒤 독일 사회와 정치권이 폭력 시위의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사민당·녹색당·좌파당은 앞다퉈 ‘폭력은 좌파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G20 정상회의 때 함부르크에는 2만명의 경찰이 동원됐다. 대부분 48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 힘든 근무를 감내해야 했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시위에 경찰 457명이 다치고 시위대 200여명이 체포됐다. 수많은 자동차가 불타고, 상점이 털리고, 건물이 파손됐다.
가장 큰 곤욕을 치르는 이는 사민당 소속으로 G20 시작 전까지는 지지율이 높았던 올라프 숄츠 함부르크 시장이다. 정상회의 전에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며 시민들을 거듭 안심시켜서, 허탈감이 더하다. 그는 “함부르크 시민들께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이미 예고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G20 회의가 좌파 대안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사는 샨첸 지역 근처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유럽 극좌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아지트라고 할 수 있어, 올해 초 연방범죄수사청과 연방헌법수호청이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일간 <쥐트 도이체 차이퉁>은 함부르크 시장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일부 좌파 훌리건의 폭력성을 간과해서 화를 불렀다고 논평했다.
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G20 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함부르크/AFP 연합뉴스
연립정부를 구성한 기민련과 사민당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일부 기민련 정치인들이 함부르크 시장 사퇴를 요구하자, 사민당 소속인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는 “숄츠의 사퇴를 원하는 사람들은 메르켈 총리의 사퇴도 요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사건의 불똥이 9월 총선으로까지 튈 조짐이 보인다.
이 지역 좌파 대안문화센터로 유명한 ‘로테 플로라(붉은 꽃)’도 도마에 올랐다. 원래 콘서트홀이었던 이곳은 좌파 대안세력들이 1989년부터 점거하면서 하위문화가 꽃피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관광명소이기도 한 이곳은 폭력 시위 책임 소재를 추궁당하며 폐쇄 위기에 놓였다. 기민련과 ‘독일을 위한 대안당’은 폐쇄를 요구했지만, 주민들은 반대한다. 한 주민은 “왜 폐쇄하냐. 이곳에서 15년간 장사했지만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기물 파손자들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를 썼다고 주장했다.
검은색 옷을 입고 복면을 한 좌파 훌리건들의 실체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주로 1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남성들인데, 체포된 200여명의 국적은 스위스·스웨덴·이탈리아·프랑스 등 다양하다. 사회학자 아르민 팔트라우그버는 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지만 지향점이나 구체적 강령 등 정체성은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노출을 꺼리는 탓에 언론도 이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반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신자유주의와 파시즘 등에 반대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