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떨어진다”…2000여명 거리 시위
대형크루즈 입항 금지 추진 단체도 결성
임대료 등 물가 상승에 토박이들은 떠나
60여년 전 인구 17만5천→5만5천 감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정박한 크루즈선. 세계기념물기금 갈무리
세계적 관광지인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올여름에도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은 관광객 유입을 막기 위한 단체 행동에 나섰다.
<가디언>은 이달 초 베네치아 주민 2000여명이 “관광객들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며 대형 크루즈선의 입항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고 23일 보도했다. 이들은 최소 수백명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들이 고작 몇 시간 동안 머물면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오물만 처리하고 떠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대형 선박 반대’(No big ships)란 단체를 결성하고 관광객이 도시 환경 파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이 단체 주도로 치른 비공식 주민투표에서도 대형 크루즈선 입항을 금지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식당 종업원인 미켈란젤로 아다모는 “베네치아인은 더 이상 이 도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관광객들은 예술이나 문화에 관심을 갖기보단 고속선을 타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여기가 미국 마이애미 해변과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
현재 베네치아 인구는 5만5000여명이다. 1950년대 17만5000여명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주민들은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숙박시설 증가로 주택 임대료가 올라간데다 물가가 급격히 뛰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도시 곳곳엔 베네치아(Venezia)와 대탈출(exodus)의 합성어인 ‘베넥소더스’(Venexodus)라고 적힌 현수막도 걸렸다. 관광객들 때문에 오히려 주민이 떠나야 하는 상황을 비꼰 것이다. <가디언>은 과거 베네치아가 ‘고요하다’는 뜻으로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로 불렸지만 이제는 이런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연간 관광객이 2800만명을 넘어선 베네치아는 지난해에도 온라인 관광 예약제 도입을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주민 카를로 벨트라메는 “매년 주민 2000여명이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며 “이 추세라면 베네치아엔 관광객만 남게 된다. 이는 사회적, 인류학적, 역사적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유네스코는 파괴 위험에 처한 문화 또는 자연 유산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고 특별 관리하고 있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유네스코가 앞장서 이 지역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관광객 수를 적극적으로 통제해줄 것이라는 바람에서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