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두 ‘스트롱맨’이 맞붙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미국 의회의 대러시아 제재안 통과에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교관 추방으로 응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30일 국영 <로시야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국 주재 미국 외교관 755명에게 떠나라고 통보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미국 외교관과 기술요원은 1000명 이상”이라며 “이들 중 755명은 오는 9월1일까지 러시아를 떠나라”고 밝혔다. 미국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 및 기술요원 수와 정확히 똑같은 수만 남겨두겠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양국 관계가 개선되길 기다렸지만 여러 정황상 당분간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 대응 없이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보여야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8월1일부터 모스크바에 있는 미국대사관 창고와 별장을 압류하겠다고 이미 발표했다.
국제 분쟁이 발생할 때 외교관 추방은 가장 간단한 대응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규모는 단독 건으론 사상 최대로 추정된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외교관 55명에게 간첩 혐의를 들며 추방한 뒤 최악의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조치로 모스크바에 있는 미국대사관뿐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지역 미국영사관 업무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17년간 푸틴 대통령을 취재한 한 러시아 기자는 “그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미뤄 온 모든 것을 이제 실행할 것”이라며 추가 제재 가능성도 내비쳤다. 마이클 맥폴 전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에서 미국에 오기 위해 몇 달씩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외교 업무의 공백을 우려했다.
이번 결정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에서 취한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추방 조치에 대한 보복 성격도 짙다. 오바마 전 정부는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미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쪽 인사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했다. 이에 맞대응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허니문’ 기간을 유지하며 미-러 관계 회복을 모색해온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스캔들’로 촉발된 양국 경색 국면을 지나며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얼굴을 맞댄 두 사람이 관계 회복을 도모했을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미 의회가 지난 27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키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러시아의 행동은 유감스럽고 부적절하다”며 “향후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을 순방 중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러시아의 행동이 바뀌면 양국 관계는 증진되고 평화와 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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