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생테티엔뒤루브레 성당 테러 1주기를 맞아 이 지역을 방문해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생테티엔뒤루브레/A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의 권한을 미국 퍼스트레이디에 준하는 수준으로 확대하려다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닷컴의 ‘브리지트 트로뇌의 퍼스트레이디 지위에 반대한다’는 글엔 6일까지 19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프랑스 정부 의전 규정에는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와 권한을 명시한 부분이 없다.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대로 트로뇌에게 ‘공식’ 지위가 인정된다면 매년 예산 45만유로(약 6억원)가 별도로 주어진다. 사무실과 직원, 경호원도 따로 배정된다. <가디언>은 미국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에겐 공식 지위와 함께 12명의 직원이 배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나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남편인 필립 메이는 어떤 공식 직함도 없다.
서명운동을 주도한 작가 티에리 폴 발레트는 “트로뇌에겐 이미 지원 인력 2~3명과 비서 2명, 보안요원 2명이 배정돼 있다”며 “추가 예산을 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투표에 부치라”고 주문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배우자는 정치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트로뇌는 시민들과 만나 함께 사진을 찍거나 연설문 작성을 도우며 대변인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 초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 배우자에게 공식 지위를 부여하겠다고 공약했고, 이를 반대하는 프랑스인을 가리켜 “프랑스적 위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랑스 사회는 마크롱 대통령의 이중잣대를 문제 삼고 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지위를 이용한 의원·각료 가족의 정부기관 채용과 의원 3회 연임 금지를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의회는 이를 받아들여 의원과 정부 각료의 배우자, 자녀를 보좌관으로 채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젊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은 그의 권위주의적 행보 앞에 무너졌다. 그를 절대왕정의 상징인 루이 14세에 빗대는 풍자도 유행한다. 지지율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지난 3일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발표한 취임 3개월차 지지율은 36%로 직전 조사에 비해 7%포인트 하락했다. 프랑수아 올랑드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취임 3개월 지지율은 각각 56%, 66%였다. 프랑스여론연구소는 “취임 후 인기가 이만큼 급격히 추락한 경우는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허니문’ 기간을 끝낸 마크롱 정부 앞엔 묵직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다음달 말로 기한을 정한 노동법 개정을 두고 반대 목소리가 만만찮다. 해고를 쉽게 하는 친기업 노동 개혁과 부자 감세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는 노동자들이 다음달 12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유럽행을 시도하는 난민들의 자격을 출발지인 리비아에서 먼저 심사하겠다고 발표해 유럽연합(EU)의 다른 국가들한테 뭇매를 맞았다. 마크롱 정부는 이후 난민 심사 기간을 기존 14개월에서 6개월로 줄이고 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혔지만 유럽연합과의 엇박자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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