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배포된 동영상에서 프랑스 출신 IS 무장대원이 ‘스파이’ 처형을 지휘하며 발언하고 있다. 그는 스페인이 무슬림들이 되찾아야 할 영토라고 주장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테러는 피해 양상과 함께 세 가지 점에서 유럽인들의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우선 아무나 소유하고 어디서나 빌릴 수 있는 차량이 테러 수단으로 자리를 굳혔다는 점이다. 총기나 폭탄처럼 검색을 통해 차단할 수도 없는 차가 대표적 테러 수단이 됐다는 것은 길거리에 ‘무기’가 널렸다는 말이 된다. 프랑스 니스,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다리 테러가 모두 차량을 이용했다. 주요 도시들은 인구 밀집 지역에 무장 병력을 배치해 대비하지만 이런 식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바르셀로나 테러는 유럽에서 최근 1년 새 발생한 일곱번째 차량 테러다.
이번 테러는 차도와 맞붙은 넓은 보행 공간에서 마구잡이 운전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도모한 점에서 지난해 7월 니스 테러의 모방 범죄로도 볼 수 있다. 니스에서는 광장처럼 넓은 ‘영국인 산책로’에 몰린 많은 관광객이 표적이었다. 바르셀로나 라스람블라스 거리도 차도를 양쪽에 낀 채 길고 넓은 보행로가 있어 관광객이 몰린다.
서유럽에서 안전한 국가가 없다는 사실도 새삼 일깨운다. 스페인은 지난 13년간 테러 무풍지대였다. 2004년 191명의 목숨을 앗아간 알카에다의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뒤 스페인은 이라크전에서 철군했다. 2015년에는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발을 뺐다. 이슬람국가 퇴치전에도 참여하지 않아,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는 표적이 될 유인이 적은 셈이었다. 북아프리카와 가까운 스페인은 주류 사회와 무슬림 인구의 갈등도 크지 않다. 과거 식민지가 주로 중남미에 있었고 북아프리카·중동에서는 대규모 식민지를 보유하지 않아 ‘역사적 원한’도 깊지 않은 편이다.
이번 테러는 이런 평가를 여지없이 깨트렸다. 극단주의자들은 할 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공격한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사실 2004년 마드리드 테러 이후에도 스페인이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그때 이후 테러 수사로 수감된 이가 120여명이다. 이슬람국가에 물자를 공급하거나 소년 대원을 모집하다 적발된 경우 등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지난 4월 테러 용의자 8명이 체포됐다. 프랑스와 벨기에 테러 연루자들도 스페인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말에는 스페인 북부에서 니스 테러를 모방해 트럭 테러를 계획한 사람이 붙잡혔다.
스페인인들이 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는 점은 신·정 일치의 이슬람 칼리프 제국 부활을 꿈꾸는 이슬람국가가 이 나라를 회복해야 할 영토라고 선전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 이라크의 이슬람국가가 5명을 처형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에서 한 조직원은 “오, 경애하는 알 안달루스, 당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을 잊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라고 외쳤다. ‘알 안달루스’는 이슬람 칼리프조인 우마이야조 계통 왕조들이 8세기 이후 700여년간 지배한 이베리아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를 뜻한다. 그는 이어 “어떤 무슬림도 코르도바, 톨레도, 샤티바를 잊을 수 없다”며 이슬람 지배기의 유명 도시들을 언급했다. 바르셀로나 테러 직후에도 이슬람국가 추종 소셜미디어에는 “알 안달루스 재정복”이라는 구호가 퍼졌다. 15세기에 가톨릭 세력이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으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것을 빗댄 표현이다.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지부 격인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도 ‘알 안달루스’를 되찾자며 청년들을 선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진행되는 이슬람국가 격퇴전이 ‘사태의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슬람국가는 두 거점 도시 중 하나인 이라크 모술을 지난달 정부군한테 빼앗겼다. 수도 격인 시리아 락까도 포위당한 상태다. 그러나 ‘국가’를 표방할 뿐 아니라 ‘운동’이기도 한 이 세력은 군사적 패퇴만으로는 사멸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이번 테러는 보여준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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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시민이 18일 스페인대사관 앞에 꽃을 놓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