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영국 런던의 켄징턴궁 문 앞에 추모객들이 붙여놓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진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1961~97)의 사망 20주기를 맞아 영국에서 추모 열기가 뜨겁다. 31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기일을 하루 앞둔 30일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추모공간이 조성된 런던 켄징턴궁 화이트정원을 방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다이애나가 생전 거주하던 켄징턴궁엔 추모 인파가 몰렸다. 생전 다이애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꽃다발, 편지가 가득 놓였다. 36년의 극적인 삶을 살고 세상을 떠난 그를 두고 <로이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신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다이애나는 1997년 8월31일 연인 도디 파예드와 차를 타고 파리 센강 주변을 달리다 사고를 당해 숨졌다. 당시 사진을 찍기 위해 따라붙었던 파파라치 여럿이 사고 직후 고통스러워하던 다이애나를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더욱 충격을 줬다.
영국을 넘어 전세계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20주기를 맞아 영국은 물론 프랑스·오스트리아·폴란드·불가리아 등에서 다큐멘터리가 잇따라 방영되고 있다. 생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히는 사람’이라고 불렸던 별명이 지금도 유효한 셈이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한 여성으로서 살아온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이번에 새롭게 드러났다.
사고 직전인 1997년 8월10일 마지막 방문지였던 사라예보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지뢰로 장애를 입은 15살 보스니아 소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이애나는 생전에 인권, 평화, 자선 활동에 열심이었고, 지뢰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사라예보/AP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방영된 영국 <아이티브이> 채널의 다큐 <다이애나, 나의 어머니: 그의 삶과 유산>에서 아들 윌리엄과 해리는 “엄마는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아이 같았다”며 “가장 장난꾸러기 같은 부모 중 한명이었다”고 회상했다. 윌리엄은 축구를 하고 있을 때면 몰래 양말 안에 사탕을 넣어 놓던 엄마의 모습을 추억하며 “격식에 매이지 않고 유머를 즐겼던 엄마가 살아 있다면 손주들을 놀리는 할머니가 됐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해리는 지난 27일 <비비시>(BBC)가 방영한 추모 다큐 <다이애나, 7일>에 출연해 “가장 힘든 사실은 터널까지 쫓아온 사람들이 엄마가 죽어가는 동안에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엄마는 심한 부상을 입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파리에서 걸려온 어머니와의 마지막 전화를 사촌들과 노느라 짧게 끊어버린 것은 지금도 후회스럽다”고 털어놨다.
프랑스의 <프랑스2>와 오스트리아의 <오아르에프>(ORF) 방송 등은 다이애나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20년 전 사고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했다. <프랑스2>의 왕실 전문 언론인 스테판 베른은 “다이애나가 왕실에 어떤 정신을 불어넣었는지, 그가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볼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영국 방송 <채널 4>에서 지난 6일 방영한 <다이애나: 그의 육성> 다큐에서는 92년 다이애나의 연설 코치로 일한 피터 세틀런과의 내밀한 대화 내용이 담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16.4%, 시청자수 350만명을 넘기며 2014년 이후 영국에서 방영된 다큐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24일 <에이피>(AP) 통신이 4케이(K) 고화질로 재작업한 81년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식 영상은 공개 5일 만에 약 9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1995년 8월19일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둘째 아들 해리, 큰아들 윌리엄, 남편 찰스 왕세자와 함께 2차대전 전승 기념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다이애나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는 열성적 관심은 왕실에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가디언>은 ‘영국은 아직도 왕실 관음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설을 통해 “군주제를 따르는 영국민은 여전히 행동하는 시민이 되기보다, 왕실을 리얼리티쇼를 보듯 대하고 있다”며 “포스트 다이애나, 포스트 브렉시트, 디지털 시대를 맞는 국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영국 언론인 제러미 팩스먼은 28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문 ‘다이애나의 죽음은 왕실을 위한 진실의 순간이었다’를 통해 “(다이애나 사망 이후) 왕실은 한층 더 현명해졌으나 영국 사람들은 아직 이 사건(다이애나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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