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금융 수도’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3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투하한 불발탄 해체 작업이 벌어져 주민 7만명이 대피했다. 이 지역은 금융업계 직원이 모여 사는 곳으로 대형 병원 2곳, 1700t 이상의 금이 저장돼 있는 보관소까지 위치한 지역이어서 혹시 모를 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데페아>(DPA) 통신은 이번 대피 인원이 2차대전 종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발견된 불발탄은 HC4000으로 1.4t 무게”라며 “워낙 거대해 대피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독일 언론은 이런 규모의 폭탄은 도로와 건물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며 ‘블록버스터 폭탄’이라고 불렀다.
불발탄은 지난달 29일 고층 건물이 즐비한 베스트엔트 지역에서 발견됐다. 괴테대학 캠퍼스와 금융센터 인근이다.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 본부가 있고, 프랑크푸르트 최대 번화가인 차일 거리에서도 고작 2㎞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정부가 마련한 대피소와 박물관 등에서 최소 12시간 동안 불발탄 해체를 기다렸다. 병원 2곳에선 전날부터 중환자와 미숙아 등 환자 100여명을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동시켰다. 가정에서 요양을 하던 환자 500여명도 의료진 도움을 받아 대피 행렬에 동참했다.
독일에선 매년 불발탄 수천개가 발견되는데 합치면 2천t이 넘는다. 건물 공사를 하다 발견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린이가 숲에서 주워 경찰에 신고하는 등 아찔한 상황도 연출되곤 한다. 아직도 2차대전 중 연합군에 의해 독일에 투하된 폭탄 270만t 중 절반가량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폭탄 처리 기술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기로 손꼽히며, 수십년간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날에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110㎞ 떨어진 코블렌츠에서 유치원 건물 공사 도중 불발탄이 발견돼 주민 2만2천명이 4시간여 대피했다. 지난달 29일 밤에는 베를린 국제공항인 테겔공항에서 불발탄 해체 작업이 벌어져 항공기 20여대가 인근 공항으로 회항하기도 했다.
해체 작업을 하다 폭탄 처리 기술자와 시민들이 입는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만 폭탄 처리 기술자 11명이 업무 중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탄약과 퓨즈가 노후화하면서 장치가 불안정해진데다, 도시 개발 등으로 불발탄을 추적하기 어려워졌다고 우려한다.
<비비시>(BBC) 방송은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란 별명이 붙은 베를린 인근 오라니엔부르크 사례를 소개했다. 작센하우젠수용소가 있는 이 지역은 연합군의 핵심 타격 지점으로 나치의 군본부와 항공기 공장, 철도 노선, 핵 연구 시설 등이 집중돼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폭탄 200여개가 제거됐으나, 여전히 350~400개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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